새를 보았다. 예쁜 참새였다. 동무들이 돌팔매질을 하여 내가 말렸다.
다 함께 새를 구경하면서 나는 말했다.
“저렇게 예쁜 새를 죽여서 쓰나?”
동무들이 웃었다. 새는 고맙다고 작은 날개를 퍼덕였다.
대체용어인 ‘친구`를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으로 풀이하는 것도 불만이다. 오래 사귀지 않아도 친구요, 멀리 떨어진 딱 그만큼 나의 지구에서 날줄과 씨줄을 넓혀줄 사람이 친구 아닌가. 하루속히 타산이 덜 섞인 말로 부활하기를 바란다.
뿐만 아니라 많은 역사적 존칭어가 조롱하는 말로 전락했다. 영감 위에 대감 있고 대감 위에 상감 있었다. 불교 이외의 종교를 가리킨 외도(外道)도 타락적 발달을 거쳤다. 지금은 중립적인 ‘출신`이지만 한때는 과거시험 급제자여야 ‘출신(出身)`이라 불렀다.
오늘날에도 자주 쓰는 낙점(落點)은 여러 후보 중에 임금이 점찍어 친히 벼슬아치를 뽑는 거였다. ‘작품이 압권(壓卷)이다` 할 때의 압권 역시 시험용어. 과거시험 답안지인 ‘권(卷)`을 쌓고 맨 위에 올린 장원(壯元) 답안지를 ‘누를 압(壓)` 자 써서 압권이라 했다.
기사 재료를 구한다는 의미로, 기자들이 밥만 먹으면 하는 일이 취재다. 그러나 지난날엔 하급관리 선발 시험이 취재(取材)였다. 방송국의 방송을 보면, 옛 신소설(『화의 혈』)에 “무죄함을 발포한 후 방송하여…”라는 대목이 나온다. 죄인 석방이 방송(放送)이고, 죄 없음에 대한 변명이 발명(發明)이다. 북한에서는 발명질이라는 말을 아직 쓴다.
한편 관광은 굉장한 광영이 담긴 단어다. 과거시험 치르러 가는 것이 바로 ‘관광(觀光)`이었다. 개인과 가문을 빛내는 길. 현대적으로도 관광은 정말로 빛을 보는 게 아닐까, 대백제전 준비 상황을 보며 혼자만의 생각을 해본다. 이완구 충남지사는 엊그제 관련 보고회에서 “백제문화제를 떠올리면 딱히 기억나는 뭔가가 없다”고 했다.
뭔가 빠진 “그 무엇”이 무엇일까. 비둘기의 출현보다 비둘기가 어디 숨어 있었는지가 더 궁금한 마술 같은 걸까. 아니면 숭산 소림사에 가면 천 년은 더 우려먹겠구나 싶은, 그런 것일까. 그 무엇이 무엇이든, 어떤 알맹이와 고갱이(핵심)를 찾아내서 우선 찾아온 관광객부터 괜히 속았다는 공허감이 들지 않아야 한다. 그때까지 과거시험 보러 가는 심정, 장원급제점 받겠다는 심정으로 착실히 준비해야 아늑하고 푸른 관광의 서광이 비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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