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우리 민족의 공동체 의식이 형성된 역사적 배경이고, (나)는 <토지>의 길상이 우관스님에게서 느꼈던 정(情)에 대한 회상 장면이다. 더불어 살면서 형성된 이러한 덕목들이 현대 사회로 오면서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 현상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는데, 그와 같은 사례를 제시하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하시오.
[유의 사항]
① 적절한 글의 제목을 붙일 것
②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 것
③ 1400자(±140) 분량으로 쓸 것
(가)
▲ - 이원복, '먼나라 이웃 나라' 에서 - |
(나)
그 어른을 나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러러 뵙고 싶은 분이었습니다. 나에게 글을 배우게 하시고……. 어릴 적에는 나는 그것을 크나큰 은혜로 알았지요. 그러나 그건 정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보내는 정 말입니다. 상전이 하인에게 베푸는 은혜, 그건 아니었습니다. 그 어른은 웃으신 일이 없었지만 웃음보다 더 정을 느끼게 하는 슬픔이 있었습니다. 그 어른 눈에는 자기 자신을 슬퍼하고 불쌍히 여기는 빛이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슬퍼할 줄 모르고 불쌍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없이 어찌 남을 위해 슬퍼하겠습니까. 배고파 본 사람만이 배고픈 것을 알듯이 말입니다. 아파 본 사람만이 아픔을 알듯이 말입니다. 해서, 그, 그렇지요. 나도 그렇습니다. 그분을 불쌍히 여기고 정을 느낀 겁니다. 애기씨의 경우에도……. 애기씬 세상에 귀한 보물이었지요. 연꽃이고 꾀꼬리새끼고 뭣이든 원하는 대로 해드리고 싶었고……. 산에 있을 때 말입니다.
나는 부엉이 울음을 따라갔습니다. 울음을 따라가면 낮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엉이를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도 울음소리는 똑같은 거리 밖에서 울었습니다. 아무리 쫓아가도 쫓아간 것만큼 앞서가는 달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지치고 잠이 들었지요. 어떤 때는 노루새끼를 뒤쫓아 온종일 산을 뛰었습니다. 잡으면 안아주고 맛난 풀을 먹여주고 가슴이 아파서 미어지는 것만 같았는데 그놈의 노루새끼는 한사코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진달래 철에는 진달래를 따먹고 머루 철에는 머루를 따먹고 해가 져서 사방이 캄캄해진 뒤 돌아오곤 했습니다.
우관스님이 이놈 다리몽댕이를 분질러놓겠다고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며 정말 몽둥이를 들고 달려 나오셨지요. 나는 스님의 눈에서, 호랑이한테 물려가지는 않았을까? 그런 겁에 질린 빛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정을 확인하기 위해 번번이 숲속을 헤매다가 어두워서 절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스님은 몽둥이로 때리진 않았지만 그럴 때마다 커다란 주먹으로 내 머리를 쥐어박았습니다. 스님은 내게 있어서 어머님이요 아버님이었습니다. 법의에 싸이 넓은 가슴은 어머님의 품이었습니다. 하얀 눈썹 밑에 굵다란 눈은 잊을 수 없는 아버님의 눈이었습니다. 어머님의 눈이었습니다. 아버님도 어머님도 아니었던 노승……. 나는 그 어른을 보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 박경리, '토지'에서 -
[논제분석 및 출제의도 파악]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제시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우리의 공동체 의식과 정(情)이 현대 사회로 오면서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 현상을 만들었고 이를 고쳐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학생 글]김명지 대전 지족중 3학년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자
▲ 김명지 대전 지족중 3학년 |
그런데 현대 사회로 오면서 이 공동체 의식과 정이 집단 내의 결속력을 다지고 어려움을 이겨내는 한편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집단, 또는 지역 이기주의로 발전하여 님비·핌피 현상, 바나나 현상 등을 유발하고 있다. 또 공과 사, 맺고 끊음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아 정치 비리와 부정부패의 원인이 되고 있다. 심지어는 전체적인 발전을 방해하며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집단 이기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만을 내세워 백화점, 지하철과 같은 편의시설은 적극 유치하는 반면, 폐기물처리시설이나 장애인시설, 화장터와 같은 혐오시설은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편의시설이든 혐오시설이든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 데에 꼭 필요한 시설이다. 각 공동체의 욕심보다는 전체적인 발전을 먼저 생각하며,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부에서도 무조건 한쪽의 희생만을 강요하기 보다는 꾸준한 토론과 협상을 거쳐서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도록 해야 하고, 필수적인 시설들이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표류상태가 되지 않도록 확실한 입장을 취하고 기피시설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는 법적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다음으로, 공과 사를 엄격히 구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사사로운 정에 이끌리다 보면 공정한 일처리가 힘들어진다. 일부 사회지도층의 경우 개인적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비리에 연루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정에 치우친 일처리는 그 동안 쌓아놓은 개인적인 명성에도 치명타를 주며, 주요한 정책 수립이나 행정 처리에 있어 투명성과 공정성이 의심을 받으며 국가적 손실을 가져오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자기가 속한 공동체 구성원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 다른 집단에게도 사랑과 관심을 베풀며 서로 돕는 개방적인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한다. 최근 태안의 기름 유출사고로 검은 기름때를 제거하기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우리의 모습이 세계에 화제가 되었다. 또한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더 나은 사회와 미래를 위해 종교와 인종, 국적을 초월한 이름 모를 자원봉사자들의 구호활동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민족의 공동체 정신과 정은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 원동력이며, 발전의 토대가 되었지만 때로는 폐쇄적인 경향으로 집단 이기주의, 부정부패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문제들을 줄이기 위해서는 집단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개방적인 자세를 가지며 공사 구별을 엄격히 해야 한다.
우리 민족에게 깊이 뿌리박힌 공동체 의식과 정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몇 사람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내가 속한 공동체에 한정하지 않는 이타적인 사랑의 실천자가 될 때, 진정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고 그 사회의 미래는 더 밝아질 것이다.
[교사평]손민옥 대전 지족중 교사
▲ 손민옥 대전 지족중 교사 |
공동체 구성원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묻는 이번 논제도 이와 같은 경우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김명지 학생처럼 우리 민족의 공동체 의식과 정이 가져오는 장단점을 언급하면서 이것이 어떤 식으로 구현되어야 하는지 서술하게 된다. 즉, 공동체 구성원의 덕목으로 집단이나 지역 이기주의를 극복하는 태도, 공과 사를 구별하는 자세, 공동체 의식의 확산, 역지사지하는 자세 등을 내세우게 된다.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인 사례와 더불어 조리있게 서술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김명지 학생은 논제가 요구한 대로 충실히 글을 잘 전개해 나가고 있다. 특히, 셋째 단락에서 집단 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전체의 발전을 생각하고 서로 양보해야 한다는 서술에 그치지 않고 정부의 역할도 제시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표현의 간결성과 단어 선택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셋째 단락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너무 길게 서술되어 있다. 자신의 주장이나 생각을 분명히 전달하고자 한다면 문장을 길게 쓰는 것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이 경우에는 ‘정부에서도 무조건 한쪽의 희생만을 강요하기 보다는 꾸준한 토론과 협상을 거쳐서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필수적인 시설들이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표류상태가 되지 않도록 확실한 입장을 취하고 기피시설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는 법적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처럼 두 문장으로 나누어 쓰는 것이 좋다. 또한 둘째 단락에서 ‘이슈`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보다는 ‘논쟁거리` 또는 ‘쟁점`이라는 우리말로 순화시켜 표현하는 것이 더 낫다.
글은 단어와 문장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잘못된 한두 단어나 문장이 옥에 티가 되어 글의 완결성을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글을 쓴 뒤에는 자신의 글을 점검해 보는 기회를 한 번 더 가져 보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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