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천식 대전대 객원 교수.행정학박사 |
전문가들이 하는 이야기조차도 뜬구름을 잡는 것처럼 추상적이고 모호할 뿐 아니라 이야기하는 사람마다 강조하는 분야가 다르니 알아먹지를 못하겠다는 것이다. 대전시가 창조도시를 지향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필자의 글도 읽어보았는데 그게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창조도시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다는 것이 요지였다. 지인과 헤어지고 나서도 글 내용이 모호하다는 지적과 창조도시의 개념도 알 수 없다는 이야기는 커다란 울림이 돼 가슴을 짓누르는 바위가 되어버렸다. 바위를 안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확실하게 바위를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어떻게 하면 창조도시를 분명하게 정의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창조도시는 새롭게 만들어진 용어라고 할 수는 없다. 역사 속에서 존재하는 모든 도시는 외부와 내부에서 성장과 쇠퇴의 무수한 계기를 만나면서, 번영의 기회를 만들거나 멸망의 길로 빠지게 되는 극적인 결론을 얻게 된다. 이때 주어진 계기를 잘 활용하여 과거에는 없었던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도시가 바로 창조도시다.
최근 들어 창조도시가 자주 인용되고 강조되는 이유는 현대의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오늘날은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져있으며 변화의 최종목적지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게다가 이 시대의 변화는 전방위적이며 총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을 뿌리째 흔들며 변화의 속도 또한 전례없는 가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창조적인 마인드로 무장한 무한대의 상상력이 절실히 필요하게 된다.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변화의 충격을 받아들여 상상 속에서 대응방안을 강구해야 하고 나아가 변화의 주도자로서 현실을 이끌고 가야하는 것이 도시와 인간의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된다.
기존의 격식과 관행을 초월하며 창조적인 의식으로 현실문제를 치유하고 미래의 삶에 대비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창조도시의 목표이며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동원 가능한 인적·물적 자원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와 가치관을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창조도시의 핵심이다. 그것은 양에서 질로의 전환이며 기능중심에서 심미적인 관점으로의 이동이고 개발년대의 산업화 절대주의를 뛰어넘는 인간과 생태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창조도시의 조직문화는 일방적이며 우월적인 리더십의 존재보다도 상호배려하며 존중하는 각 부문간의 형평과 조화를 추구한다. 그것은 미래의 변화가 총체적이며 포괄적이라는 점을 알고 각부문간의 협력과 기여가 문제해결의 열쇠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동시에 경제성과 효율성도 중요하지만 개성의 다양성과 가치기준의 수준이 천차만별이라는 점도 인정하고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질적 자원은 한계가 있으나 미래의 대표자원인 사회적 자원의 이용은 한계가 없는 무궁무진한 것이며 그것은 쓰면 쓸수록 많아지고 나눌수록 커지는 것을 아는 것이다. 신뢰와 사랑이 사회적 자본의 기본이며 베풂과 섬김, 배려와 존중의 가치 또한 미래사회를 지배하는 대표적 사회자본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창조도시는 전환기에 놓여있는 우리가 선택해야하는 불가피성과 함께 새로운 사고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과거의 패러다임은 인간의 능력과 지식은 무한대인 것으로 보았고 과학기술은 끝없이 발전해 인간의 번영을 보장하고 평안과 안락을 가져올 것으로 믿고 있었던 것이 지금까지의 인류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은 더 많은 난제를 만들어내고 도덕과 윤리관을 혼란 속에 빠뜨려 새로운 가치관을 필요로 하며 우리가 바라는 인간의 안녕과 행복은 멀리 사라질 뿐이다. 대신에 조바심과 안달이 우리의 내부를 가득 채울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인간 내면에 숨겨진 또 다른 숭고한 욕구를 일깨워내고 우주의 광대함과 경이로움을 무한한 감동으로 받아들일 중 아는 것이 진정한 창조도시로의 전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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