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오늘도 삽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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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오늘도 삽질하며

  • 승인 2008-03-13 00:00
  • 신문게재 2008-03-14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반항과 저항의식이 깔린 흑인영어에선 ‘That`s bad`는 ‘That`s good`의 뜻이다. 잘한다, 재미있다, 웃긴다, 쇼한다…. 한국말도 흑인영어 못지 않다. 써도 써도 어렵구나 생각하며, 리모컨으로 채널 있는 대로 다 눌러보는데….


채널 돌리기는 방송국 관계자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남자들 습관이다. 남자 40%는 “지금 뭘하지?” 아닌 “다른 것 없나?”해서 채널을 잡아 돌리는 성향이 있다(여자는 28%). 그렇게 돌리다가 대전의 한 대형마트 노래교실을 엿보게 된다.

노래강사 김정선씨다. 그녀는 “놀고 있네, 웃기고 있네,는 절대 나쁘지 않다. 신나고 적극적으로 놀자”며 ‘아싸! 불타는 이 기분`을 실어 노래를 선창한다. 우리네 문화권은 ‘논다`를 ‘댄스한다, 삽질하다` 등과 같이 썩 좋게 수용하지 않는다.

존경하는 선배님께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사람이 웃긴대. 최 위원 글 말이야.” 평소 기사가 재미있다는 것을 지식, 정보, 재미가 뭉뚱그려진 최상급 표현으로 생각하지만 이때의 ‘웃긴다`는 해석이 필요한 경우다. 덕담이려니 응수했지만 화끈하게 ‘좋다` 했으면 사람 속이 얼마나 편했을까.

손(hand) 하나뿐인 경제학자를 원했다는 트루먼 대통령의 진의를 알겠다. ‘한편으로는(on the one hand)` 꼬고 ‘다른 한편으로는(on the other hand)` 비트는 식. 자평하면 기자나 문인도 이런 식의 헛삽질을 간혹 한다.

때마침 ‘삽질` 의성어를 따려고 최승범 교수 의견을 빌릴까 했으나 허사였다. 그는 맷돌소리를 〔돌돌돌돌〕로 묘사한다. 메떡 치는 소리〔콩닥 콩〕, 찰떡 치는 소리〔쫄기덕 쿵〕, 맘놓고 뀐 방귀는 〔푸웅〕, 조심하다 샌 방귀는 〔뾔옹〕으로 세분하면서 삽질 소리 언급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어느 여름 내내 삽질하던 기억에 의존하니 분명한 〔삽 삽〕이었다. 한 삽 한 삽, 삽질이 헛짓과 동의어인 것은 신성한 삽질행위에 대한 모독이다. 영어로도 땅파기(digging the soil)는 ‘어리석은 짓(a fruitless debate)`이란다. 오나가나 불도저 앞에서 삽질 시범 보이는 부류 탓이다.

‘한편으로는(!)` 땅파기의 진정성을 모르는 소치다. 새 문인협회장이 “땅파기보다 어려운 게 글쓰기”라고 본보 인터넷방송에서 밝힌 뜻도 글쓰기-땅파기의 상통성, 아마 그걸 거다. 고대영어 시절 ‘쓰다`는 ‘긁다, 파내다`였다. 자작나무 껍질을 긁어 자국 낸 데서 나왔지만, 긁고 파는 행위는 현재진행형이다.

지금도 글쓰기는 수백, 수천의 삽질을 대신할 불도저 없이 삽으로 감당하는 가내수공업이다. 컴퓨터는 노동을 대체할 기계가 아닌 노동을 돕는 도구다. 글쓰기가 평범한 삽질에서 비롯되는 사실, 온 땅을 갈아엎지 못해도 잘만 삽질하면 불도저, 포클레인 앞도 문제 안 된다는 사실을 많은 동료 문인과 기자들은 믿고 있다. 힘들어도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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