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맹현 대전홀리클럽 회장 |
엠비셔스는 엠비의 꾸밈새처럼 보이지 않는가? 어쨌든, 2월25일 제17대 대통령 취임으로 우리나라는 국정 여러 부문에서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기업친화형 정책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 탁상에서의 공허한 논쟁보다는 현장을 중시하겠다는 마인드 등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제안들이 참신하지 않는가?
얼마 전 용산에 있는 전쟁 박물관에 잠시 들렀을 때, 여러 군인들의 동상 앞에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표현에 내 눈길이 잠시 멎었다. 그렇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도, 번영도, 더 나아가 아무리 약속되어진 미래라고 하더라도 결코 공짜는 없다. 국민 각자에게 할당된 눈물과 피와 땀을 “책임지고” 쏟아내야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선진국 문턱까지 간신히 따라 붙으며 열심히는 살았지만 책임지는 사회를 만드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성수대교사건과 지하철 가스폭발사고 그리고 허베이 스피리트호 사고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우리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발뺌하기에 바빴고, 국보 제1호인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되었을 때 고양이 발톱만한 우리의 책임감도 함께 소실되어 버렸다. 새 대통령은 특히 3월3일 열린 첫 국무회의에 이어 학군장교 임관식에서도 가진 자, 힘 있는 자들의 도덕적 의무인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강조하였다.
최근 영국의 해리 왕손이 아프간 최전선에서 10주간 군복무한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과거 포클랜드 전쟁 때 앤드류 왕자가 무척 위험한 헬기 조종사로 근무했던 사실과 함께 영국왕실의 얼음절벽 같은 책임감이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부와 명예와 권력을 남보다 많이 가졌기 때문에 책임질 일이 있으면 죽음을 불사하고 솔선수범하여 맨 앞줄에 총알받이로 나서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것은 죽음을 초월하는 순교자적인 의식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일반 국민들에게 이보다 더한 윤리교육과 도덕교육은 없으며 이보다 진한 위로와 격려가 없다. 영국이 경제적 부를 이루고 국민들이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산업혁명이 일찍이 시작되고 북해에서 유전이 발견되어서가 아니라, 이러한 책임감 위에 사회기강이 바로 서있기 때문이다.
수년전 사업차 동남아 여행을 많이 했는데 K국을 들렀을 때다. 60년대 1인당 국민소득 87달러의 우리나라보다 3배정도 잘 살았던 이 나라는 국민들이 가정부로 인부로 팔려나가 벌어오는 외화로 겨우 버티면서 귀족들은 나 몰라라 하고 탈세와 재산도피를 일삼아 불쌍한 민초들의 희망은 실종되어버렸다. 그러고도 이 나라 의회에서는 존귀한 귀족들이 국민과 나라를 위한답시고 지금도 공허한 논쟁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 TV에 날마다 방영되고 있다.
우리는 7,80년대 초고속 성장을 하며 경제 후진국을 탈피해온 좋은 모델을 만들어 냈지만, “빨리빨리”에만 치중하다보니 사회 내부 곳곳에 불합리와 미숙한 부분들을 간과해왔다. 아니 이런 것들에 신경쓸만한 여유와 시간이 없었다. 최근 인사청문회에서 보듯이 자녀들의 병역의무문제, 외국국적 자녀의 의료보험수혜, 자격이 없는데도 절대농지를 구매하는 등 국민들의 상당수가 일상에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범하고 마는 일들에서 곤욕을 치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모두가 예외일 수가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과정에서 희망을 본다. 우리의 수준과 품격이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한 차원 높은 성장을 위한 탈피의 아픔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그동안 성장 일변도로 치닫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성장과 성숙을 같이 추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각자가 소임을 다 하면서 또 사회구성원의 하나로서 자기와 자녀, 그리고 재산들을 관리하며 철저하게 책임지는 습관을 길러나가고 더 나아가 사회지도층이라면 사회적 책임까지 잘 감당해 나간다면 일류국가의 국민 자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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