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컷 한컷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 절절히 묻어나
봄 캄보디아行 “남을 위한 삶 그의 노래가 큰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북한군 오경필 중사(송강호)의 이 한 마디는 많은 이들 가슴에 파고들어 기억에서 잘 지워지지 않는 것 같다. 송강호의 천진한 표정연기에 웃음이 나오면서도 요절한 가수 김광석에 대한 슬픔이 묻어나올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올해로 세상을 등진지 꼬박 12년이 되는 가수 김광석. 이 책은 그를 추억하는 사진작가 임종진의 추억을 담아 둔 책이다. 십 여년 동안 혼자 간직했던 생전의 젊은 김광석의 사진들을 실어 두었다. 어디에서도 보여진 바 없었던 미공개 필름들이기에 더욱 값진 자료들이다.
이런 자료를 소장하고 있던 인물은 임종진으로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떠돎이 천성인데 오래도록 누르고 살았다고 투덜대는 1968년생 사진쟁이다. 디자인과 공예를 전공했지만 사진을 마음에 두고 헤매다가 1995년 봄부터 언론사 사진기자로 밥숟가락을 들었다. 처음 입사한 곳이 중도일보사이다. 한 곳에 오래 있으면 심장이 굳는다는 증상을 핑계 삼아 여러 매체를 떠돌았고 만 10년을 넘기고서 최고의 직장이라고 여기는 한겨레신문을 끝으로 기자의 길을 접었다.
디지털 사진의 무한한 속도감을 못 따라가는 그는 여전히 필름으로 사진찍기를 좋아하기에 필름으로 천천히 느리게 깊게 대상과의 소통을 추구하고 있다. 오랫동안 한겨레문화센터와 심산스쿨에서 ‘소통으로 사진하기`란 사진 강좌를 열어 사진을 잘 찍는 법이 아닌, 함부로 찍지 않는 법을 가르치며 배웠다.
소통의 카메라는 삼팔선과 국경을 수시로 넘나들었다. 기자 시절 여섯 차례의 방북 취재를 통해 이념의 틀을 벗은 북녘 사람들의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사진들을 담아와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김정일 위원장도 아는 남녘 사진기자로 통하고 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기 전 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바그다드를 쏘다니다가 민병대에 스파이로 오인돼 혼쭐이 나는 등 민첩하지 못한 행동으로 회사 높은 분들의 애간장을 자주 태운 탓에 참으로 ‘느린` 사진기자라는 또 하나의 별칭도 붙었다.
총 2부로 나누어 구성된 이번 책의 1부는 김광석과 저자 임종진의 이야기로, 2부는 김광석과 그를 추억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꾸며졌다. 김광석을 얼마나 좋아했고 그리워하는지 절절하게 묻어나는 저자의 소박한 글 읽는 맛과 더불어 작심 없이 찍힌 듯 자연스러운 김광석을 엿볼 수 있어 책장을 넘기는 순간순간 어디선가 그의 노래가 들려오는 것만 같은 착각에도 빠지게 될 것이다. 아니면 나도 모르게 그의 음반을 찾아 듣게 될는지도. 특히나 김광석의 고등학교 때 사진이라든가 영정사진이라든가 무대 위에서 희미하게 찡그리던 이마의 주름이나 환하게 웃을 때 하회탈처럼 모든 선이 둥글게 퍼지던 얼굴을 만나게 될 때 가슴 한구석이 아련해지는 기분. 저자 임종진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큰 선물이 아닐까 한다.
작가 임종진은 이렇게 말한다. “‘가슴으로 그를 듣는다는 것`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어느 누구든 마찬가지라 생각을 해봅니다. 제게도 김광석은 그랬습니다. 저 역시 그의 음악으로 한 시절 진하게 위로받고 인생을 한 수 배운 수많은 이들 중 하나입니다. 다만 행운이라면, 그를 알 즈음 막 사진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사진 찍는 재미에 푹 빠져 있던 저는 그의 곁을 맴돌며 한 컷 한 컷 마음을 다해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앵글도 노출도 기교도 몰랐습니다. 오로지 그를 ‘찍고 싶다`는 의욕만 믿고 날 것 그대로인 시선으로 다가섰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 사진들은 1993년부터 천 회 공연이 열린 1995년 여름까지의 기록입니다.”
저자 임종진은 올 봄에 캄보디아로 떠난다. 그는 말한다. 김광석의 노래로 그는 무언가 남을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이를 실천하는 데도 김광석의 노래가 큰 힘이 되어주었다고. 그는 우리에게도 나눔의 기회를 선사했다. 책에 실린 사진은 원하는 누구나 원하는 사이즈로 구입할 수 있는데 전 수익금을 캄보디아의 미래를 위해 아이들의 학자금과 무료사진관 운영에 쓸 예정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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