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문학 한전 전력연구원 책임연구원 |
정답은 그렇지 않다. 최첨단 기술로 광대한 우주의 신비를 밝히고, 공상과학이었던 극소 잠수정으로 사람의 혈관을 탐사할 날이 멀지 않았지만 인간은 지금까지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여전히 자연의 무궁한 조화를 뛰어 넘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방화로 시작된 사소한 사건이 국가적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재해가 앞으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는 결코 단언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벌어질 재해에 국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할까? 최근 대형 재난사고인 이천 냉동창고 화재, 숭례문 화재,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화재들로 인해 관계기관은 미봉책을 마련하기에 앞서 재해 결과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여 중장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교훈을 올바르게 받아들이고 미래 잠정적 사고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재해에 대한 인식 전환과 선순환 대응전략이 개발돼야 한다.
화재의 4대 요소는 가연물과 점화원, 공기 및 연속 연소반응이다. 공학적 해결책에 의하면 이들 요소 중 한 요인이라도 없어질 경우 화재는 소멸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정관념에서 개선점을 찾기보다 선진화된 분석방법과 평가기술에 기반을 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첫째 기반은 과학기술을 이용한 항상심(恒常心)을 배양하는 것이다. 이는 평소에 위험을 관리하고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 요소는 제도와 체제에 기초한 이타정신(利他情神)이다.
재해가 발생하면 최선을 다해 사람과 재물을 구하고 서로의 고통을 분담하며 재해대응체계의 선진화에 역량을 모아야 한다. 셋째 요소는 연구개발로 최신기술을 개발하고 실용기술의 적용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과학자는 실용기술을 개발하고 낡은 제도를 뛰어넘는 연구와 도전으로 새 역사를 일구어야 한다.
이와 함께 당사자와 주변인은 사회와 국가의 공동운명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주장에 귀 기울이고 입장을 배려하며 주장과 인정이 공존하여 건강한 기강을 세우고 국가와 함께 번영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한편, 최근 언론을 통해 진행된 심야토론과 지면의 정부기관 보고내용을 살펴보면, 재해의 선순환 대응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화재와 같은 예측불허의 재해가 발생한 경우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외양간과 가축을 보호하는 방식이 예전과 같다면 제도권 밖의 화마가 또 다시 외양간을 덮칠 것이다. 재해의 선순환에서 가장 강조되어야 할 사항은 재해의 발생 가능성을 반드시 인정하는 것이다.
‘설마’가 아니라 ‘가능성’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준비하는 것이다. 선순환은 재해가 발생할 경우 원인이 아니라 결과를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는 재해를 용인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로부터 교훈을 얻어 제도와 체제를 개선하고, 기술과 방법을 개발하며 제도권을 지원하고 공존을 위해 격려하는 것이다.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상대방을 초주검으로 몰아넣는 것보다 땀에 얼룩진 소방관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무너진 자존심으로 상처받기보다 과거의 유물과 현대의 기술을 융합하는 슬기가 필요하다.
민족의 혼을 끌어안은 국보와 문화재에 대한 화재위험 예측, 화재리스크 정량화, 시뮬레이션에 의한 화재진압 선진화는 가장 우선하여 추진되어야 할 연구개발 분야다. 정부기관과 산학연의 합동 연구, 제도와 운영체계의 정립과 개선, 비상사태에 대비한 관계기관과 전문가의 유기적 커뮤니케이션 구성과 헌신적 노력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제도권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추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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