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드라마평론가 |
현실이 이러해서 그럴까? 최근 재벌과 서민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봉합하려는 드라마가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사실 재벌과 서민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은 그동안 수많은 드라마에서 수없이 다뤘던 소재였다.
하지만 최근 방영중인 주말드라마는 기존의 신데렐라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재벌과 서민의 사랑을 새로운 관점에서 그리면서 재벌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 KBS2 주말연속극 ‘엄마가 뿔났다`는 비록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는 않지만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참하게 성장한 딸이 경제적인 격차 때문에 예비 시어머니에게 모질게 당하는 장면을 내보내면서 시청자들을 격분시켰다. 하지만 너무 분노할 필요는 없다. 모욕적인 언행에 의연하게 대처하면서 며느리로 들어간 딸은 시어머니의 안하무인격인 성격을 변화시키고 결국 위선적인 가족 관계로 뒤틀렸던 집안을 사랑이 넘치는 행복한 가정으로 일궈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SBS 주말극장 ‘행복합니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재벌가의 자식들이 모두 서민이나 빈민층의 자식들과 사랑에 빠진다는 다소 작위적인 설정으로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 드라마는 비록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지만 가족 간의 사랑이 넘치는 서민들의 삶을 통해 재벌들의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거스르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묻기 위해 꼭 그렇게 재벌과 서민의 사랑이라는 진부한 구도를 사용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부모의 재력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새로운 신분사회에서 재벌가는 그들만의 리그를 통해 결속력을 다지는 경우가 많다. 1970년대 개발시대의 성공 신화는 이제 더 이상 만들어지지 못하는 세상인 것이다. 따라서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대한민국 1%의 이상한 서민 사랑은 자칫 경제 양극화의 폐해에 대한 시청자의 현실 감각을 마비시키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드라마는 사회적 의제 설정 능력이 뛰어난 일상 예술이다. 대한민국 1%, ‘강남 땅 부자`라는 뜻의 ‘강부자` 내각이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어낸 새 정부 각료들을 향한 국민들의 차가운 시선을 녹이는 방법은 그동안 그토록 수없이 강조되었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드라마 속의 재벌들이 어떻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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