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정모 변호사 |
권위 있는 법원의 판결을 통하여 대의명분을 실현하거나 과연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등 금전 이외의 목적으로 소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국적인 목적은 오로지 돈이었다는 것이 법조인으로서의 오랜 경험의 소산이라는 한 판사님의 말이었다. 과연 그럴까? 돈만이 분쟁의 모든 해결책인가?
판사시보시절 조정위원으로 참관했던 사건으로 가게를 운영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기계를 고액을 들여 구입하였으나, 잦은 고장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가게운영이 어려웠고, 수차에 걸쳐 수리도 받았지만 계속되는 고장으로 인하여 급기야 매수인이 판매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안이었다.
판매자인 피고는 원고의 손해를 배상해 줄 의사가 있었으나 원고가 제시한 금액이 너무 고액이라 재판부에 적당한 금액선에서 조정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원고는 절대 조정은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 이유로 오랫동안 부모 속을 썩여오던 원고가 그 부친으로부터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받은 사업자금으로 기계를 구입해 가게를 운영하였는데, 잦은 고장으로 인하여 제대로 영업도 하지 못했고, 이런 원고를 지켜봐야 했던 부친이 원고에 대해 많이 실망하였고, 그것이 화병이 되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고장의 원인을 원고의 관리소홀 내지는 작동미숙으로 돌리는 피고의 태도에 화가 났기 때문에 법원으로부터 책임이 피고에게 있다는 점을 확인받고 싶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제 막 소송의 시작단계였으므로 조정위원들이나 피고가 제시한 상당한 금액에서 합의하는 것이, 향후 원고가 자신의 관리소홀이나 작동미숙이 아닌 기계자체의 결함 때문에 자주 고장이 났고, 자신의 피해가 어느 정도 되는지 등을 입증하여야 하고, 소송이 장기화될 경우 그로인한 비용, 시간, 노력 등이 든다는 점을 감안하면, 원고 입장으로서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최선의 해결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원고는 법원의 최종판결을 원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시빌액션’은 인근 공장에서 흘러나온 산업폐기물이 수돗물을 오염시켜 어린 아이들을 포함하여 마을 사람들이 백혈병으로 사망하자 백혈병으로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의 요청으로 변호사가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한다는 이야기다. 이야기 중간에 한 회사와 합의를 이끌어내지만, 보상금을 배분하는 자리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처음부터 보상금이 목적이 아니라 책임 있는 사람의 사죄와 공장의 폐쇄를 원할 뿐이었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뜬다.
물질만능이 지배하는 작금의 시대상황 속에서 어쩌면 돈만 받는 다면 그간의 고통이나 손해도 한 순간에 씻겨 나갈 수 있고, 오히려 더 나은 삶을 살지도 모르고, 반면에 대의명분 등을 이유로 싸우다 덩그러니 판결문 하나 받는다면 경제적인 손해만 가중될 뿐 오히려 이전보다 나아진 것이 없거나 더욱 곤궁해질 수도 있어 비경제적인 문제에 매달리기 보다는 좀 더 경제적으로 민첩하게 대응하는 것이 나은 태도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사회에서는 돈은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마지막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원고도, 백혈병으로 자식을 일찍 떠나보내야 했던 어머니도, 600년 동안이나 늘 그 자리에 있던 숭례문의 화재를 지켜보던 국민들도 진정 원했던 것은 보상금이나 말끔한 복원이 아니라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적당한 선에서 돈으로 합의를 보려는 비겁한 태도보다는 진정으로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면서 피해자에게 사죄하는 것을 원했던 것이고, 이러한 가해자의 깊은 반성이 있어야 피해자에게도 진정한 용서와 관용이 싹틀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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