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병호 대전문화산업진흥원장 |
하지만 요사이 지역의 화두가 되고 있는 과학 비즈니스 벨트의 핵심 아이디어인 과학과 예술의 융합이라는 거대 담론은 상당한 시간이 흘렀어도 주목할 만한 결과가 나오고 있지는 못하다. 처음부터 이분법적 서양철학을 기초로 한 현대 과학이나 서양 예술에서는 진정한 융합의 모델이 나오기는 어려운 것일까? 그렇게 본다면 총체적 융합의 아이디어는 역시 한국을 포함한 동양에서 나올 수 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지역 문화산업 진흥원장이라는 입장을 떠나, 객관적으로 볼 때도 대전은 이 융합의 시대정신을 펼치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흔히 많이 들은 이야기 일지 몰라도 대전은 국토의 중심이자 교통의 요지이다 또한 서로 다른 고향을 가진 인구가 고르게 모여서 사는 지역이기도 하다.
둘째, 갑천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30년 연륜을 가진 대덕 연구 단지의 과학 기술의 인프라, 남쪽으로는 예술의 전당, 시립 미술관 등 문화·예술의 인프라를 적절히 갖추고 있다.
셋째, 다소 역설적일지 몰라도 역사적으로 새로운 문화가 탄생한 지역은 항상 정치적 변방이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에도 막부정치에서 소외되어 있던 조슈(長州), 사쓰마(현재 가고시마)가 이끌었고. 이스라엘의 정치적 비주류 지역 갈릴리에서 유대교의 교조적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기독교가 탄생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융합, 퓨전 문화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 새로운 상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관용의 정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대전에서 실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있지만 제한된 지면에 소개하면 다음과 두 가지가 있을 것 같다.
첫째 사이버 대전 향우회, 즉 대전판 세컨드 라이프를 만들면 어떨까 한다. 대전은 제 3청사, 계룡대가 위치하여 주민등록 없이 거주하는 인구가 다른 지역 보다 상대적으로 많다. 이런 유동 인구를 사이버 상에서 끌어안고 2중 시민권을 주면 어떨까? 사이버 공간에서는 영·호남도 수도권에서 온 사람들도 모두 대전사람으로 생활하고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다. 온-오프 상에서 상당히 오래 거주한 사람에게는 현실세계에서도 2중 시민권을 주고 약간의 혜택을 주면 융합의 중심 도시로서 명성을 떨칠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로 대덕 연구단지에서 시작되는 과학-기술 국책 프로젝트 시작 단계부터 문화-예술인이 참여하게 한다. 과학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구호는 계속 외쳐 왔지만 실제로 구체적 행동을 해 온 적은 없다. 물리학 연구가 진행되며 그 아이디어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영상화하고, 유전공학의 분자 구조를 유화로 그려간다, 통신기술 개발과 함께 그 기술로 변화될 사회를 그리는 단편영화가 동시에 제작된다. 연구개발이 진행되는 도중에 오히려 역으로 과학자들이 문화 콘텐츠로부터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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