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경동 중문침례교회 담임목사 |
내가 탄 차가 태안으로 들어서면서 길가로 수많은 현수막들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얼마 전 라디오에서 격앙된 문화 칼럼니스트의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왜 아직도 이 처참한 사고와 재난의 이름을 ‘서해안, 태안 기름유출사고’라 명명하는지 모르겠다. 유사 이래 그 어떤 선박으로 인한 기름유출사고의 이름을 지역 명으로 한 적은 없다.
사고의 이름을 지역 명으로 하다보니, 주민들은 또다른 고통과 피해를 입고 있다. 태안 지역 뿐 아니라 서해안 전체가 관광객이 뚝 끊어진 상태다. 게다가 생산지가 서해안인 해산물은 소비자들에게 고개를 돌리게 한다. 대중매체가 줄기차게 사람들에게 가해 물질이 없다면서 시식을 하는 장면은 도리어 서글프다.
오래 전 패스트푸드 회사인 맥도널드사가 비슷한 피해를 겪은 적이 있다. 맥도널드사 햄버거에 지렁이 고기가 들어간다는 소문이었다. 말 그대로 헛소문이었지만, 일파만파로 소식이 퍼졌고, 회사는 일등 쇠고기를 넣는 사진과 검사결과를 보여주는 대대적인 광고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정적인 실수를 하였는데, 광고 문구 중 “우리 회사의 햄버거에는 일등 쇠고기만을 씁니다. 결코 ‘지렁이 고기’를 넣지 않습니다. ” 그런데도 여전히 판매량은 저조하였다. 두 번째 문장 그 사족이 문제였다. 소비자의 뇌리에는 무의식적으로 ‘지렁이’라는 이름이 지워지지 않고 각인되어 구입을 꺼리게 하는 것이었다.
서해안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은 어업과 관광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들이 다시 소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보이는 조치가 아닌 분명한 반전이 필요하다. 이제는 도리어 현수막의 문구를 바꿔야 할 것이다.
‘전화위복의 기적을 만드는 현장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육체의 질병를 치료하는 의사가 있는 것처럼, 필자는 마음과 영혼의 질병을 치료하는 목회자이다. 주민들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하루 잠깐 방문한 내 자신이 부끄럽고 민망했다. 그나마 지역의 150여 가정들에게 중문교회교인들이 정성껏 모은 식료품 몇가지를 나누어 드렸다. 그 꾸러미들을 감사히 받아들고 가는 그분들의 뒷 모습이 그 밤에 왜 이리 짠하고 콧등이 아린지 모르겠다.
저들의 생각과 마음은 지칠대로 지쳤고 삶의 소망을 바라볼 여력을 잃어가고 있다. 집으로 돌아온 그날 밤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기도했다. 그리고 그들의 저린 가슴속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하염없는 눈물로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리고 새벽이 온 듯 마음에 평안도 함께 왔다. 하나님이 이 나라를 사랑하시고 보살피고 계시며 치유하실 것을 확신했다.
서해안 주민 여러분이여.
새옹지마. 어려움이 도리어 기회가 된다. 그것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긍정이라는 백신을 맞아야 한다. 그리고 인내의 꾸준한 체력관리가 필요하다. 사람의 생각은 전이가 된다. 아무리 외부 사람들이 몸부림을 친다해도 한계가 있다. 병든 바다는 주민들의 자식이다. 그 바다는 사랑을 원한다. 그런데 부모가 어찌 의기소침할 수 있는가? 소망의 에너지를 만들어 옆사람들에게 전하자. 그러면 커져가는 그 사랑만큼 바다도 주민들의 마음도 빠른 회복으로 새로운 서해안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끝으로, ‘서해안, 태안 기름유출 사고’가 아니라,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 유출사고’로 바르게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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