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무 서산 학돌초 교사 |
개학 첫날, 헐레벌떡 뒤쫓아 온 상현이가 묻는다. 동원이도 교실로 귀찮게 따라오며 묻는다.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아우성이다.
“이 녀석들아, 선생님하고 헤어지는 게 그렇게 좋으냐?”
“선생님, 방학동안 아이들과 놀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어요. 피구해요.”
“오~ 소이야, 어쩐지 날씬해진 것 같더라니. 방학 때 운동 많이 한 모양이구나.”
운동이라면 끔찍이 싫어하던 소이의 손에 배구공이 들려 있다. ‘우승 5학년’이란 글자가 인상 깊게 눈에 박혔다. 까맣게 손때가 묻은 배구공이 오늘따라 정겹다.
햇볕이 따스하던 4월, 체육대회 준비로 운동장이 시끄러웠다. 5학년은 단체 경기의 점수를 합하여 1위 팀에게 배구공을 시상하기로 하였다. 모두들 자기반이 일등하기 위해서 연습에 열을 올렸다. 우리 반은 아침활동 시간에 연습하기로 하였다.
“하나, 둘, 셋, 아휴~!”
며칠 동안 연습을 해도 넷을 넘지 못하자 석호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교실로 들어갔다. 정은이도 삐쳤는지 수돗가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또, 어떤 아이는 볼 멘 소리로 포기하자고 했다. 나는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축 늘어진 아이들을 다독거렸다. 서로 마음을 모아 최선을 다한다면 꼴찌도 괜찮을 것이라고.
만국기가 하늘 가득 춤추던 날, 5학년 체육대회가 열렸다. 학급대항 경기는 근소한 점수 차이로 진행되었다. 1반과 5반이 공동 1등이고, 우리반이 3등이었다. 아이들은 하나마나 1반이 우승할 것이라고 체념한 듯 했다.
남자 선수들의 긴줄넘기가 시작되었다. 5반과 한 개 차이로 3등을 했다. 여자 선수들은 운동장에 나가기도 전에 포기한 눈치였다.
“아자, 아자, 파이팅!”
주먹을 힘껏 쥔 팔을 들어 보였다. 1반은 18개, 2반은 12개, 3반은 8개. 드디어 우리 반 차례가 되었다. 처음엔 남자 아이 한 명이 숫자를 세더니, 어느 새 하나 둘 입을 모아 합창을 하기 시작했다.
“스물 하나, 스물 둘. 와~!”
여자 선수들은 그 자리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방방 뛰었다. 우리는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조회대에서 반장이 우승 공을 받을 때, 환호성을 지르며 한참동안 박수를 쳤다.
책상 유리판 밑에 있는 사진 속 아이들은 여전히 배구공을 들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나도 그때 일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제 새 학년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도 아이들처럼 새로운 아이들과 만날 기대감으로 설렌다. 아이들은 믿는 만큼 성장하고, 기대하는 만큼 성숙해진다.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아이들이라고 포기하지 말자. 아이들이 어울려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자. 푸른 잎과 달콤한 열매를 맺은 아름드리나무로 커가길 바라며 오늘은 오랜만에 피구나 한 판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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