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구 변호사, 대전시민사회연구소 협동처장 |
필자에게는 한반도 대운하의 경제성이나 지리학적 의의,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검토할 만한 역량이 부족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한반도 대운하 문제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하는 이유는 한반도 대운하를 추진하고자 하는 세력을 대표할 만한 정치인이 어느 언론에서 한 발언 때문이다. 즉 그는 국민들이 이명박 후보를 제17대 대통령으로 당선시켰고, 한반도 대운하는 이명박 당선인의 대표적인 공약으로서 이미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국민들로부터 그 정당성을 부여받았으므로 그 추진여부를 지금 논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말하였다. 필자는 누군가의 말꼬리를 잡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하여, 정치지도자의 그러한 발상을 심히 우려하고 있음이다.
우리 사회, 공동체의 근본적인 질서를 규율하는 것이 헌법이다. 즉 우리 사회가 어떠한 이념과 질서로 구성되어야 하는지를 근본적인 측면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이 헌법이다. 그리하여 국회가 제정한 법률도 헌법에 위반되면 이를 무효로 만들 수 있는 권한까지 헌법재판소에 부여되어 있다. 행정수도특별법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으로 결정되면서 행정수도 추진이 좌절되고 행정중심복합도시의 형태로 바뀐 것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헌법의 위상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그러한 우리의 헌법은 크게 두 가지 원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그것이다.
법치주의란 사람이나 폭력이 지배하는 국가가 아니라 법이 지배하는 국가가 되어야 함을 의미하는데, 현대 복지국가에서의 법치주의는 단지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에 의하여 통치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법률의 목적과 내용 또한 기본권보장의 헌법이념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실질적 적법절차를 요구하는 법치주의를 의미한다”(헌법재판소 1998. 2. 27 결정).
또한 민주주의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그 때 그 때의 다수의 의사와 자유 및 평등에 의거한 국민의 자기결정을 토대로 하는 법치국가적 통치원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그 당연한 귀결로 다수결의 원칙을 그 구성요소로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 원리에서 인정되는 다수결의 원칙은 단순히 다수가 결정하는 바에 그 집단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형식논리는 아닌 것이다.
즉 다수결의 원칙은 집단 내 다수의 의사를 전체 구성원을 구속하는 집단의사로 간주하는 의사결정방식이지만, 다수의 의사가 즉각적으로 전체의 의사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과 갈등이 이성적인 토론을 거쳐 조절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의사결정방식이다. 다수결 원칙은 결과의 원칙이 아니라 과정과 절차의 원칙인 것이다.
이렇듯 우리 헌법이 기초하고 있는 정치질서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실질적인 내용이 헌법이념에 부합하는 법규범을 다양한 의견과 갈등이 이성적인 토론에 의하여 조절되는 과정을 통해 수립됨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리하여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의 성숙정도는 의사결정과정에서 집단 내 소수자의 참여를 얼마나 보장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소수자의 이해를 얼마나 잘 대변해 내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당선인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국민이 의문을 제기하는 공약에 대하여 이미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이므로 그 정당성은 확보되어 있고 추진여부를 다시 논할 수 없다는 발상은 우리 헌법상의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고 보여진다. 다수결이란 비록 다수의 의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소수의 의사를 무시한다면 그 효력이 없는 것인데, 그 공약에 대한 지지가 국민 다수의 의사인지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앞으로 소수자 인권보호가 우려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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