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희 대전가장초등학교 교감 |
처음 마음에는 열손가락을 꼽아도 모자랄 정도의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바래지고 생략되어 마침표를 찍을 때쯤에는 한손도 넉넉한 열매뿐이어서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워 지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한꺼번에 많은 이들이 교단을 떠나 황량한 공동현상이 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2월은 그 짧은 날 수만큼이나 아쉽고, 파스텔 색조보다는 쓸쓸한 무채색에 가까운 명암으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짧은 2월의 나날을 세듯이 보내면서 아킬레스건인 위통에 자주 시달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떠나는 날이 다가오기 때문이지요. 교감이란 직함을 받고 처음 학교에 발령을 받았을 때의 초심은 외람되게도 ‘도와 드리자!`는 것이었답니다. 조금 전까지 그가 그랬듯이 선생님들도 네모진 교실에서 사십 명에 가까운 아이들을 부여안고 얼마나 팔이 아픈지 잘 알기 때문이랍니다.
요즘 아이들은 같은 또래라도 개성이 다양하고 강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랑의 매`라는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 명의 어린이도 소외되거나 낙오되지 않고 그들을 안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수업기술`뿐이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께 재미있는 공부를 도와드리기로 했습니다.
공부가 재미있어야 학생들은 선생님이 좋고, 교실이 좋고, 학교가 좋기 때문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모아서, 교수·학습 방법 개선에 뛰어 들었습니다. 원한다면 그도 수업을 보여주고, 필요하다면 어디든 찾아가서 보고 들은 것을 꿀벌이 꿀을 나르듯 전달하였답니다.
또 하나 그가 주력한 것은 아침에 일찍 와서 교무실 책상위에 성찬을 차린 것입니다. 학교 가까운 마트에 달려가서 부실한 위장을 채울 만한 것을 골라 예쁜 접시에 담아 놓은 것을 선생님들은 ‘성찬`이라 불렀답니다. 또 어떤 선생님은 우리 교감선생님의 초심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보겠다고 했답니다. 그러나 성찬을 차리는 역할은 곧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어느 선생님께서 그보다 먼저 차려놓았기 때문이지요.
선생님들은 마치 릴레이라도 하듯이 성찬을 차렸고 그들의 정성은 헛되지 않아서 점심시간 즈음에는 접시가 말끔히 비워지곤 했답니다. 위가 채워져야 사십 명을 안을 힘이 생성될 것이란 그의 추측은 어긋나지 않았답니다. 아름다운 릴레이는 배려라는 이름으로 교실에서 전이되었고, 학급과 학년 간에도 다양하게 파생되었습니다. 2월이 아픔은 3월의 만남으로 이어지듯이, 누군가가 가고 오는 꽃샘추위에도 초심의 릴레이는 계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단에도 봄이 오고 있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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