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영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
최근 “관료는 영혼이 없다”는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말이 인구에 회자됐다. 지난달 국정홍보처의 대통령직인수위 업무보고에서 김창호 처장이 발언하면서다. 이미 폐지가 기정사실화된 부처 소속 공무원들의 처우를 염두에 둔 기관장의 비통한 심정 토로라 이해한다. 사실 관료는 어느 정부에서나 그 정부의 철학에 따라 일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씁쓸함은 지울 수 없다. 국정에 대한 책임의식보다 ‘가늘고 길게` 자리를 보전하는 데 연연하는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영혼 없는 관료와 철새 행보를 보인 정치인. 이 환상의 배합으로 부활한 인사가 새 정부에서 행정부처를 통괄하는 초대 총리로 지명됐다. 한승수 후보자는 1980년 신군부의 집권 기반인 국보위 위원을 기점으로 제6공화국 당시 상공부장관, 문민정부 시절 재정경제부 장관 겸 총리를 역임했다. 2000년 2월 그는 16대 총선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다. 6일 뒤 한나라당을 탈당하고는 민국당 후보로 강원도 춘천에 출마해 당선된다. 3선 째다. 그 뒤 민국당이 새천년민주당과 정책연대를 맺은 덕분에 외교통상부장관을 맡는다. 유엔총회 의장에 오르는 영예도 누린다. 장관직을 마친 2002년 2월 그는 민국당을 탈당한다. 그리고 유엔총회 의장 임기 종료 다음 달인 10월 한나라당에 복당한다.
철새들은 대체 무얼 먹고 살기에 이리도 명줄이 긴 걸까? 거꾸로 대한민국의 무엇이 철새들의 서식지로 안성맞춤인 걸까? 연줄이다.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얽히고 얽힌 그물망이 가치관과 도덕성, 이에 기초한 자질과 식견 등의 합리적 요소를 압도하는 것이다. ‘지역주의`란 이런 행태를 통칭하는 용어 아닐까 싶다.
지역주의는 아무래도 한두 다리 건너면 연줄이 닿기 마련인 비수도권 지역에서 똬리를 깊숙이 틀고 있는 듯하다. 2000년의 16대 총선은 이를 어느 정도 입증했다. 당시 시민사회가 주도한 낙천·낙선운동은 ‘바꿔 열풍`을 일으키면서 선거의 최대 변수로 작용했다. 낙천·낙선 대상으로 지목된 후보들 상당수가 실제 쓴맛을 봤다. 그러나 20명의 대상자 중 19명이 낙선한 수도권에 비해 비수도권 지역은 그 정도가 덜했다. 영남에서는 35명 중 16명만이 낙선했다. 강한 바람이 불었으나 지역주의의 아성도 그 못지않게 강고했던 것이다.
철새가 되기를 작정한 정치인들은 바보가 아니다. 오히려 명민함이 지나쳐 영악한 게 탈이다. 지금 잠깐은 욕먹을지언정 종국에는 끈끈한 연줄이 자기를 보호해 주리라는 계산을 끝어낸 사람들이다. 이들은 심지어 자신과 지역민의 가교 구실을 하는 언론의 생리도 정확히 읽고 있다. 잠시, 그리고 가끔씩 자신을 철새라고 꼬집겠지만 결국은 누가 앞서는지 따위의 판세 중계보도에 심취하는 게 언론임을 안다.
대전의 국회의원 수를 늘려 우리 지역의 정치적 파워를 키우자는 발상은 어처구니가 없다. 광주, 울산과 비교해 표의 등가성을 들먹이나 그런 논리대로라면 서울은 얼마나 많은 선거구가 늘어나야 하는지 모르나? 쪽수보다 중요한 게 정치인의 수준이고 질이다. 철새 정치인의 당락 여부는 우리 지역의 역량을 가름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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