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순 충남대병원 감사 |
연애시절엔 소위 ‘작업`하느라 꽃도 많이 사주곤 했는데 막상 결혼을 하고난 뒤에 꽃집에 들른 적은 가뭄에 콩 나듯 한 것 같아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드는데, 아내역시 민망한 표정 속에 싫지 않은 기색을 보이며 눈으로는 벌써 형형색색의 꽃을 훑으며 향기를 만 끽 하고 있다. 낯익은 모습의 소담스런 쪽빛 꽃 한 다발이 있어 주인에게 물으니 후리지아란다. 밝은 노랑색 후리지아는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어서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서로에게 매우 좋은 선물이 되곤 했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맑고 은은한 향은 같지만 푸른색은 꽃빛이 다르니 추억도 느낌도 전달이 안 된다며 다른 꽃을 고르자고 했다. 아내의 눈길은 붉은 장미에 꽂혔다.
나는 웬 지 모르게 장미에 그다지 흥미가 없어서 지금껏 장미를 내 돈 주고 산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지나치게 강한 붉은 색채가 너무 자극적이어서 그랬는지 혹은 사랑의 은어로 는 너무 노골적인 느낌을 주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어선지 꽃집에 들를 때마다 그 강렬한 유혹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 보다 무난한 꽃으로 내 마음을 표현하곤 했다.
아내역시 비슷 한 취향이었는데 갑자기 장미에 ‘필`이 꽂히는 걸 보면서 나는 속으로 아내도 나이가 먹더 니 청순함이나 애련함 보다는 좀 더 선정적이고 화끈한 걸 좋아하는 쪽으로 바뀌었나하는 생각하며, 요즘 TV드라마 ‘사랑과 전쟁` 같은 통속극에 혹여 영향을 받은 건 아닌 지, 아니 면 나이가 먹고 사회생활을 할수록 화장도 짙어지게 되고 부끄러움도 적어지는 그런 것처럼 이젠 꽃도 화려한 꽃을 더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닌가하고 잠깐 새에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주인이 말을 한다.
장미는 붉은색 계통 뿐 아니라 어느 색이든 종자개량을 통해 생산할 수 있는데 유독이 푸른색 장미는 아직까지 생산해 내지 못하고 있다고. 나는 그 말이 잘 믿기지 않아서 다시 확인 했다. 지금 유전자 조작을 통해 복제 동물까지 만들고 있는 마당에 그까이꺼 대충해도 만들 수 있지 않겠냐고. 그러나 아직까지 염색 꽃이 아닌 실제 재배 장미는 어떤 기술로도 파란 장미를 생산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에 만약 그런 기술이 있다면 전 재산을 다 내놓고 사겠다는 호언을 들으며 결국엔 장미가 아닌 국화 한 다발을 사들고 나왔다.
시장을 빠져나와 무거운 짐을 나에게 부린 아내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한다. 당신은 죽었다 깨나도 모르는 게 있어. 이 세상에 여자가 존재하는 한 절대로 블루로즈는 만들어 지지 않아, 그 것이 아무리 예쁜 것일지라도. 왜냐구, 여자는 사랑할 때 뿐 아니라 한이 맺힐 때도 피처럼 붉게 타오르는 법이거든, 그러니 제아무리 세상에 없는 블루로즈를 만들어 낸다한 들 삶의 의미에 깊이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라면 누가 사겠어.
집에 돌아와 한바탕 전쟁을 치루고 나자마자 ‘아줌마`가 되어 여덟팔자로 코를 골고 있는 아내를 보며 평소에 생각지 못했던 ‘포스`를 느끼며 어느새 아내가 후리지아 향이 나는 붉은 장미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 다. 아내가 있는 한 절대로 블루로즈는 꿈도 꾸지도 못할 것이며 그럴 필요조차도 없게 된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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