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대전식 비빔밥 이론

  • 오피니언
  • 문화칼럼

[안과밖]대전식 비빔밥 이론

최충식 논설위원

  • 승인 2008-01-31 00:00
  • 신문게재 2008-02-01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융합의 정신을 강조한 나머지 춘향의 미(美)와 불경이부(不更二夫)라는 정절마저 분리 불가능한 것으로 본 이어령씨. 대전의 발전 전략으로 제시한 “다양한 것들을 융합해라”, “각 지역의 문화를 받아들여라”도 디지로그이기 이전에 비빔밥 이론이었다.


대전에 온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디지로그적 창조력`을 전파했다. 그는 놀라운 재주를 지녔다. 익히 아는 지식이라도 그의 입을 거치면 잘 비빈 비빔밥 한 그릇으로 화한다. “대전이 최고의 문화산업도시의 잠재력을 가졌다”는 말은 마르고 닳도록 씨부렁거렸지만 물리적인 나이를 잊은 노학자의 입을 통하니 달리 들린다. 말이 너무 현란해 어수선하다는 사람도 간혹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비빔밥의 근원인 골동반(汨董飯)의 ‘골`에는 원래 어지럽다는 뜻이 있다.

논리적으로는 절대로 어지럽게 비비지 않는다. “대전적인 것, 백제적인 것을 내세우지 말고 융합과 퓨전문화로 승부해야 한다”는 조언은 명쾌했다. 얼핏 들으면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과 상치하는 것 같지만, 이는 지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의 접점의 강조다. 과학과 예술로 비벼진 대전만의 콘텐츠로 전혀 색다른 맛을 내서 승부하라는 것이다.

그 자신이 우리 문화 코드로 인정한 비빔밥에서도 조립과 해체가 가능한 햄버거와 달리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섞은 디지로그의 강점이 발견된다. 외국인이 콩나물, 고사리, 미나리, 시금치를 먼저 먹는 다음에야 고추장을 섞어 비빔밥을 먹는 걸 본 적이 있다. 일본에서는 전주(全州), 즉 ‘젠슈`라는 자동 비빔밥 기계가 나왔지만 손맛이 담겼을 리 없다. 디지로그 역시 “어금니가 씹는” 마인드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같은 얘기다.

비빔밥 정서는 엑스포과학공원 활용 방안에 대한 조언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연히 대전문화산업진흥원은 문화도 하고 산업도 하는 퓨전 개념으로 이해한다. “문화가 어디 있고 산업이 어디 따로 있냐”며 둘 사이에 경계를 세우려 들지 않는다. 통념과 성역에 갇힌 생각들을 과감히 던지고 대전시민이 ‘디지로그 맨`이 되라는 석학의 고견(高見)이다.

물질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컨셉트를 바꾸는 데는 1초면 된다고 그는 또 말했다. 20대에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때부터 다뤘던 부분이다. 납치된 그리스 왕비 헬렌을 트로이로부터 찾는 데 10년 걸렸지만 이몽룡이 춘향을 찾는 데는 “암행어사 출도야!” 하는 외마디 고함과 마패 하나로 해결됐다. 고작 10초 걸렸다는 얘기다.

한밭 대전이 문화 콘텐츠의 밭이 되는 길은 속도보다 조화와 균형에 있다. 오방색을 갖춘 비빔밥에서 계란 노른자는 균형을 상징한다. 잘못 받아들이면 문화도 산업도 아닌 잡탕문화로 떨어진다는 점은 퓨전의 위험성이다. 이것을 경계해야 대전에서의 ‘디지로그` 선언은 환상적 예언이 되지 않는다. 노른자위 같은 것을 끝까지 잃지 말아야 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3. [기고] 공무원의 첫발 100일, 조직문화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4.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5. JMS 정명석 성범죄 피해자들 손해배상 민사소송 시작
  1. 대전보건대, 대학연합 뉴트로 스포츠 경진·비만해결 풋살대회 성료
  2.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3. 한국자유총연맹 산내동위원회, '사랑의 반찬 나눔' 온정 전해
  4. 구본길에 박상원까지! 파리 펜싱 영웅들 다모였다! 대전서 열린 전국 펜싱대회
  5. 대전시, 여의도에 배수진... 국비확보 총력

헤드라인 뉴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27일 낮 12시께 눈발까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중구 한 교회의 식당은 뜨끈한 된장국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식당 안에서는 대전자원봉사연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150여 명의 어르신이 빼곡히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얇은 패딩과 목도리 차림인 어르신들은 강한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한 어르신이 식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7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이다. 매일 혼..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창단 후 첫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충남아산FC가 승강전 홈경기를 앞두고 관심이 뜨거워 지고 있다. 충남아산FC는 28일 대구FC와 승강전 첫 경기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홈 경기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잔디 교체 공사로 인해 임시 경기장으로 천안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승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28일 홈 경기 사흘 후인 12월 1일 대구로 이동해 어웨이 경기를 치른다. 승리수·합산 득실차 순으로 최종 승격팀을 정하게 되며 원정 다득점 규정은 적용하지 않아 1·2차전 결과에 따라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 시도가 2027년 열리는 하걔세계대학경기대회 성공 개최를 재차 다짐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27일 대전 호텔 ICC 크리스탈볼룸에서 2024년 제2차 위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는 지난 3월 강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이다. 행사에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부지사와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시도 체육회장, 시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강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이 공식적으로 첫..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