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으로는 절대로 어지럽게 비비지 않는다. “대전적인 것, 백제적인 것을 내세우지 말고 융합과 퓨전문화로 승부해야 한다”는 조언은 명쾌했다. 얼핏 들으면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과 상치하는 것 같지만, 이는 지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의 접점의 강조다. 과학과 예술로 비벼진 대전만의 콘텐츠로 전혀 색다른 맛을 내서 승부하라는 것이다.
그 자신이 우리 문화 코드로 인정한 비빔밥에서도 조립과 해체가 가능한 햄버거와 달리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섞은 디지로그의 강점이 발견된다. 외국인이 콩나물, 고사리, 미나리, 시금치를 먼저 먹는 다음에야 고추장을 섞어 비빔밥을 먹는 걸 본 적이 있다. 일본에서는 전주(全州), 즉 ‘젠슈`라는 자동 비빔밥 기계가 나왔지만 손맛이 담겼을 리 없다. 디지로그 역시 “어금니가 씹는” 마인드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같은 얘기다.
물질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컨셉트를 바꾸는 데는 1초면 된다고 그는 또 말했다. 20대에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때부터 다뤘던 부분이다. 납치된 그리스 왕비 헬렌을 트로이로부터 찾는 데 10년 걸렸지만 이몽룡이 춘향을 찾는 데는 “암행어사 출도야!” 하는 외마디 고함과 마패 하나로 해결됐다. 고작 10초 걸렸다는 얘기다.
한밭 대전이 문화 콘텐츠의 밭이 되는 길은 속도보다 조화와 균형에 있다. 오방색을 갖춘 비빔밥에서 계란 노른자는 균형을 상징한다. 잘못 받아들이면 문화도 산업도 아닌 잡탕문화로 떨어진다는 점은 퓨전의 위험성이다. 이것을 경계해야 대전에서의 ‘디지로그` 선언은 환상적 예언이 되지 않는다. 노른자위 같은 것을 끝까지 잃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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