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경동 중문침례교회 담임목사 |
지난 2008년 1월 7일 오전 10시45분께 이천시 어느 한 냉동물류센터 지하층 기계실에서 "쾅쾅쾅" 하는 연쇄폭발 소리와 함께 작업 중이었던 인부 57명 중 40명은 숨진 채 발견됐고 나머지 17명중 10명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일부는 중태에 빠진 사고가 발생했다.
이와 유사한 사고는 과거 1998년 10월에도 부산의 어느 신축 냉동창고 화재로 27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부상당한 사건이 있었다.
어째서 같은 사고들이 여러 분야에서 항상 반복 되는 것일까? 사실 이 질문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매년 여러 큰 사고들을 경험한다. 그에 따르는 '위험불감증'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심각한 중병일 수 있다. 어이없는 표현으로 필자도 어느새 사고에 대한 위험불감증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닌지 섬뜩하다.
그것을 증명하듯 '위험불감증'이라는 단어는 불과 5년 전인 2003년에 국립국어원 '신어'자료집에 수록되었다. 어찌 보면 사람들 스스로가 만든 한심스러운 일이다.
언제나 대형 사고가 터진 후 현장 검증을 하고나면 결과는 "소 잃고 외양간 고쳐야 합니다"라는 것이다. 이제는 지겹지도 않은가. 그도 그럴 것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런 불안한 환경을 알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현실이 그러하다. 일자리마저 구하기 힘든 시기에 겨자가 매워서 눈물이 나와도 먹어야 살 수 있으니 그 누가 겨자가 맵다고 당당하게 말할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위험불감증이라는 것이 한 분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 경제, 문화, 군대, 의료, 예능, 학문을 막론하고 심지어는 한 개인의 가정에서 까지 그 증상은 심각하다.
성경에 보면 인류의 첫 인물인 아담과 하와가 나온다. 이들도 '위험불감증'에 걸린 듯하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언급하면서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 한지 알려 주었다. 그러나 그 규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위험불감증의 주범인 뱀의 유혹으로 인해 가정 파괴에 결과를 초래한다.
사고는 갑작스럽게 일어나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증후들이 보이면서 조용히 다가온다.
에덴동산의 하와는 여러 시간 동안을 선악과에 관심을 보였을 것이다. 물론 뱀에 유혹도 꾸준했다. 반면 그 시간에 남편인 아담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남편의 역할은 가정의 문제가 발생되지 않도록 수시로 점검해 주는 역할이다. 그 기능이 상실되면 선악과는 무방비 상태가 된다. 그 이후로 인류는 험난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선악과는 어찌 보면 위험불감증에 시초일 수 있다. 어느 분야이던 정해진 약속들이 있으며 각각의 선악과가 존재한다.
'위험불감증'의 특효약은 '유비무환'이다. 안타까운 것은 알면서도 방치하는 안일(安逸)한 마음가짐 때문에 모든 발생하는 사고들이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착각 속에서 비롯된다. 그 나태함이 약을 복용해야할 시기를 놓쳐서 도리어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입힌다. 사실 기계나 건물이야 다시 만들면 되지만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사람의 생명이다.
시대적으로 볼 때 앞으로 일어날 사고에 대한 예측을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런 조건이라면 현장 실무자들은 집중력만 잘 발휘해 주면 된다.
그러나 다시금 새로운 소망을 갖는 것은 오늘 이 순간에도 '유비무환'을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성실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의 성실함은 소박하지만 위대하다.
그들은 가족을 생각하는 건강한 정신에서 출발한다. 함께 일한다면 가족이나 다름없다. 거기에는 서로를 생각하는 배려가 있으며 각자의 존엄성을 인정해 준다.
오늘도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위험불감증'에서 벗어나 '유비무환'을 실천함으로써 안전한 환경 속에서 사고 없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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