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종호 충남대 국문과 교수 |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수준 높은 실용영어교육에 집착하는 것은 이명박당선자의 공언도 그러하거니와 영어 교육 시장이 연간 약 15조원 규모로 성장하고 1인당 영어 공부 시간이 평균 15,548 시간(10년간)에 이르며 1인당 영어 사교육 비용이 5,000만원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투자에 비해 별 효과가 없다는 점에 기인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이번 기회에 영어교육이 읽기 쓰기에서 듣기 말하기의 의사소통 중심으로 전환되어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다만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우리가 잊어선 안 되는 사실은 국제적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언어능력을 갖추는 것은 글로벌 인재가 갖추어야 할 우선적인 항목이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항목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21세기는 논리적 선형적 능력, 컴퓨터와 같은 디지털 능력 등을 요구하는 정보화 시대의 사회에서 하이컨셉(high-concept) 하이터치(high-touch)의 시대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니엘 핑크(Daniel Pink)의 설명처럼 하이컨셉이란 패턴과 기회를 감지하고 감성적 아름다움을 창조해내며 훌륭한 스토리를 창출해내고 표면적으로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아이디어를 결합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능력과 관계가 있다. 또한 하이터치란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고 미묘한 인간관계를 잘 다루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잘 유도해내고 목적과 의미를 발견해 이를 추구하는 능력과 관계가 있다. 이렇게 본다면 글로벌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들에 대한 요구는 다양성과 개방성을 바탕으로 한 감성적인 창조의 능력,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리더십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시스템적 사고의 능력을 필요로 하며 언어소통 능력은 그중 기본적인 요소의 하나일 뿐임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변화를 주도하는 이러한 능력들이 대부분 언어를 담당하고 있는 좌뇌가 아니라 우리의 우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좌뇌가 순차적 논리적 분석적인 활동을 한다면 우뇌는 비선형적 직관적 전체적인 파악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뇌 중심적인 가치들에 대한 교육적인 배려가 없이 단순한 영어구사능력이 자녀들의 장래를 보증해 줄 것이라고 여긴다면 이것은 세계화라는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된다. 세계화란 의식의 문제이지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또 한 가지 강조해야 할 점은 자국어를 잘 하는 아이는 외국어도 잘 한다는 사실이다. 혹자는 ‘영어몰입교육의 가장 끔찍한 결과는 우리말 파괴`라고 말하지만 외국어 능력이 뛰어난 아이는 국어 능력도 뛰어나다. 바꿔 말하자면 국어능력이 뛰어난 아이가 외국어 실력이 높다는 것이다. 취업 포털사이트인 잡코리아가 실시한 기업체 인사담당자 대상의 설문조사 결과도 ‘국어 능력이 뛰어난 사원이 대체로 일을 잘한다`(75%)로 나타났으며 ‘매우 그렇다`(9%)는 답변도 적지 않았다. 외국어 교육의 출발점은 외국어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국어인 셈이다.
어쨌든 “영어 과외 안 받아도 대학 갈 수 있게 하겠다”는 당선인의 발언이나, “고교 졸업하면 외국인과 의사소통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발언이 ‘정치적 효과`를 겨냥한 선전으로 그치지 않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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