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겹 이야기 속에 감춰 묘사
대상작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외 총 7편이 수록되었다. 대상 수상작 `사랑을 믿다`는 남녀의 사랑에 대한 감정과 그 기복을 두 겹의 이야기 속에 감추어 묘사한 작품이다. 32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가는 권여선씨이다.
권여선씨는 수상소감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은 갈대에게나 저에게나 불가능하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환상을 버리기 위해서, 바람을 타기 위해 그리고 더 큰 환상을 품기 위해 흔들리고 또 흔들린다.
저 같은 얼치기에게 상이란 너 잘났다, 너 잘 쓴다는 인정의 표징이다. 그런데 내가 잘 쓴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피식 거품이 꺼지고 무언가 바싹 옴츠라드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고, 채찍질을 한들 얼마나 더 빨라지겠습니까. 다시 흔들림으로 돌아가렵니다. 수상 소식을 듣고 책장에 꽂힌 역대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보니, 그들도 나처럼 흔들렸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흔들림도 저리 가지런하니 코스모스 꽃밭처럼 아름답구나 생각한다. 다시 흔들리면서 살겠습니다.`
대상수상작에 빛나는 '사랑을 믿다'는 두 남녀의 만남을 서사의 중심에 올려놓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연애의 실패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바로 자신들이 서로 모른 채 지나쳐버린 사랑의 느낌을 알아차린다. 이 평범한 소재를 사랑의 문법이라는 하나의 서사 원리로 끌어올리는 작업에 작가 특유의 소설적 기법이 동원된다.
이 작품의 텍스트에는 두 겹의 이야기가 서로 얽혀 있다. 겉 이야기에서 ‘나`는 예전의 친구였던 그녀를 다시 만난다. 그녀는 평범하지만 콧날 끝에서 윗입술에 이르는 단정한 인중선을 지녔다. ‘나`는 그녀의 단골 술집에서 만나 각각 실패한 사랑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그녀가 들려주는 고모의 죽음에 얽힌 짤막한 이야기 한 토막이 속 이야기로 자리한다. 실연의 아픔을 지니고 있는 두 남녀의 사랑에 대한 감정과 그 기복이 이 두 겹의 이야기 속에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다.
실제 스토리는 이렇다.
여주인공의 단골술집에서 나는 안동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면서 그녀에게 고모부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면서 피식 웃는다. 친척의 죽음을 이야기 하면서 피식 웃는 그녀를 보며, 헤어져 있는 3년동안 그렇게 힘들었나? 하는 생각까지 했지만, 그녀는 나와 헤어지고 나서 그녀의 어머니에게 엉뚱한 제안을 받는다. 고모 집에 꼭 다녀오라는 거다.
그 이유는 고모가 얼마 전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잃고 시름에 빠져 있으니 가서 위로라도 해주고 자식 역할을 하라는 거다. 나이가 많은 고모와 고모부에게는 허름하지만, 3층짜리 상가건물이 있으니, 가서 조금만 위로해주고 있다보면 천하에 둘만 있는 분들이라 상가 건물이 그녀에게 돌아갈 거라는 얘기였다. 그녀의 어머니 말대로 2년 후 고모와 고모부는 차례로 돌아가셨고 그녀는 상가건물의 주인이 되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헤어졌던 나와 만나 직접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서운했던 일들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소설이 대상을 받은 이유는 우선, 권여선이라는 작가의 글쓰는 방식의 독특함이다.
그녀의 작품에는 유난히 먹고 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잊을만하면 뭔가를 요리하거나, 눈 앞의 요리를 품평하고 먹으면서 감탄하거나, 술잔을 홀짝이며 잡담을 나눈다. 이런 기법을 통해 독자를 인물과 동일시하게 은근히 끌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사랑을 믿다'에서도 소설 초두부터 단골술집을 찾아가고 먹음직스런 나물과 김치를 안주로 혼자 소주 반병을 비우면서 이야기를 꺼내놓고 있으며, 그 이야기란 것도 여주인공과 맛있는 안주를 놓고 감탄하며 술마셨던 사연이 주를 이룬다.
책을 읽는 독자들이 주인공과 일치 될 무렵 작가는 주인공의 실제 상황으로 안내한다.
그녀가 사랑한 것이 사실은 나였다는 사실을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깨닫고, 그 사실을 모른채 다른 여자와 연애를 하다가 실연을 당한 나는 자기로 인한 그녀의 실연 후일담을 듣고 자신이 거꾸로 그녀를 잃은 뒤늦은 실연의 고통을 앓게 되었다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가 나에게 “괜찮지?”라는 질문에 나는 “괜찮아.”라는 대답. 이것이 작가가 우리들에게 던지는 화두는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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