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시시콜콜한 것 대신에 정부와 한전, 지자체가 5년 동안 못 뽑은 대불공단 전봇대를 2일만에 뽑았다는 스토리가 전깃줄 위 참새 시리즈를 대체하고 있다. 빳빳한 당선인의 한마디에 1시간의 에움길이 1분의 지름길로 화했다는, 신화 같은 줄거리다. 전봇대가 규제와 탁상행정의 대명사이자 생생한 ‘현장`의 메타포(은유)가 된 것. 이래서 저래서 안 되던 과오를 씻기라도 하듯 감전 위험이 높은 비오는 날 전봇대를 옮긴 것도 놀라운 변화 적응력이다. 전봇대 뽑기는 시행착오를 줄이는 진화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말이다.
정말 뽑아야 할 대상이 실질의 전봇대이든 마음의 전봇대이든 잘못 박혔으면 뽑아내야겠지만 가령 전봇대 뽑기 분위기에 편승해 수도권 규제 완화 등까지 혁파할 전봇대로 치부되어 자고 일어나면 뽑히지나 않을지 지방은 걱정이다. 지자체도 주민지향적 행정과 거리가 먼 멀쩡한 전봇대 뽑기라면 아예 시도하지 말아야 한다.
정책결정 이론모형에는 쓰레기통 모형이란 것도 있다. 문제, 해결책, 참여자, 선택기회가 따로따로 놀다 어느 시점에 우연히 마주치는(즉 한 쓰레기통에 담겨지는) 경우다. 전봇대를 뽑는 유연한 사고가 이처럼 되죽박죽이 되면 인치가 법치를 억누르고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자의적 적용이 판치게 된다.
당장 성과만 바라보는 것은 상황주의의 위험성이다. 거추장스러워 보여도 ‘킬(Kill)`시키지 못하는 전봇대는 지금 도처에 남아 있다. 대불공단 사람들은 전봇대 한두 개 뽑아서 될 일이 아니고 도로 확장 등 공단 전체를 리모델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전봇대가 되었건 전면적인 전선 지중화 사업을 펼 형편이 아니어서 더욱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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