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전봇대 뽑기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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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전봇대 뽑기의 어려움

최충식 논설위원

  • 승인 2008-01-23 00:00
  • 신문게재 2008-01-24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서해안이 기름 범벅이 되고서야 국가방제능력이 도마 위에 오른 것, 등급제 수능이 1년 만에 사실상 폐지되어 89년, 90년생들을 울린 것은 고장이 나야 대처하는 탁상행정(‘전봇대`)의 전형이다. 자리의 힘, 직권력(position power) 한 방에 원점으로 가는 것도 전봇대일 수 있다. 규제개혁은 새삼스러운 과제가 아니다.


요즘 ‘전봇대` 뽑기가 모범사례(best practice)처럼 회자되고 있다. 아르바이트 모집과 나훈아쇼 광고가 나붙기도 하고 이동통신이며 유선방송이 임대해 거지반 거미줄이 다된 전봇대, 그걸 끌어안고 주정하는 취객들과 마을 나온 개들의 애용 쉼터가 되곤 하는 만만한 전봇대, 전깃줄을 매개로 인간세계를 훤히 밝혀주는 그것.

그런 시시콜콜한 것 대신에 정부와 한전, 지자체가 5년 동안 못 뽑은 대불공단 전봇대를 2일만에 뽑았다는 스토리가 전깃줄 위 참새 시리즈를 대체하고 있다. 빳빳한 당선인의 한마디에 1시간의 에움길이 1분의 지름길로 화했다는, 신화 같은 줄거리다. 전봇대가 규제와 탁상행정의 대명사이자 생생한 ‘현장`의 메타포(은유)가 된 것. 이래서 저래서 안 되던 과오를 씻기라도 하듯 감전 위험이 높은 비오는 날 전봇대를 옮긴 것도 놀라운 변화 적응력이다. 전봇대 뽑기는 시행착오를 줄이는 진화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말이다.

정말 뽑아야 할 대상이 실질의 전봇대이든 마음의 전봇대이든 잘못 박혔으면 뽑아내야겠지만 가령 전봇대 뽑기 분위기에 편승해 수도권 규제 완화 등까지 혁파할 전봇대로 치부되어 자고 일어나면 뽑히지나 않을지 지방은 걱정이다. 지자체도 주민지향적 행정과 거리가 먼 멀쩡한 전봇대 뽑기라면 아예 시도하지 말아야 한다.

‘MB 전봇대 찾기`의 상징은 다만 상징일 뿐이다. 너도나도 뽑은 전봇대 자리에 전시행정을 심는다면 탁상행정 못지 않게 나쁠 수 있다. 높이만 오르다 촛농이 태양에 녹아 떨어진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한때의 빼어난 강점이 치명적인 약점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심을 때나 뽑을 때나 제대로 문제를 인식하고 대안을 탐색하고 최선을 선택하는 과정은 요식행위가 아니다.

정책결정 이론모형에는 쓰레기통 모형이란 것도 있다. 문제, 해결책, 참여자, 선택기회가 따로따로 놀다 어느 시점에 우연히 마주치는(즉 한 쓰레기통에 담겨지는) 경우다. 전봇대를 뽑는 유연한 사고가 이처럼 되죽박죽이 되면 인치가 법치를 억누르고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자의적 적용이 판치게 된다.

당장 성과만 바라보는 것은 상황주의의 위험성이다. 거추장스러워 보여도 ‘킬(Kill)`시키지 못하는 전봇대는 지금 도처에 남아 있다. 대불공단 사람들은 전봇대 한두 개 뽑아서 될 일이 아니고 도로 확장 등 공단 전체를 리모델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전봇대가 되었건 전면적인 전선 지중화 사업을 펼 형편이 아니어서 더욱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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