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기조 시인, 한국문인협회 명예회장 |
선거기간 동안 “경제를 살리겠다”고 말한 후보가 당선되고 “진짜 경제를 살리겠다”고 말한 후보는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왜 진짜란 말을 넣었는지 모르겠지만 경제문제만은 스스로 원조라고 자처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개발시대를 살아오면서 경제개발 논리 때문에 홍역을 치뤘다. 특히 창작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예술가)은 경제개발 논리에 밀려 목구멍에 풀칠조차 못했다. 하나도 경제개발, 둘도 경제개발이었기 때문에 창작예술계에는 전혀 투자를 외면했다. 심지어 예술계에 투자하는 것을 사치라고 여겼다. 경제가 먹고 사는 문제이니만큼 가장 소중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로지 경제에만 정신을 팔면 이 세상이 너무 각박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이번 대선후보들이 유권자를 만나는 곳도 모두 공장이 아니면 시장 같은 산업현장인 것을 보고 나는 걱정을 했다. 물론 경제가 중요하지만 문화적 취향이 풍기는 전시회나 극장 또는 영화관에라도 한번 들려 시민들과 함께 즐거운 모습을 보여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일종의 문화적 스킨쉽이 없는 후보들이었다.
그들 중 실물경제에 밝다는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 되었으니 경제는 살리겠지만 지금 굶어 죽기 직전에 놓여 있는 창작에 전념하는 예술인들은 또 배고픔에 시달려야 하는지 딱하기만 하다.
이번 대선에서는 정책대결이 실종되고 경제가 최우선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에 문화예술정책이 제대로 거론될 여지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문화예술계에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도 마련하지 못한 것도 잘못이다.
우선 이명박 당선자의 말을 빌리면 (계간지 ‘문화예술`이 대선 후보에게 질문한 것에 대한 답변) “문화는 이제 국가경쟁력의 원동력으로 인정받고 그 가치가 어느때보다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며 “문화의 창조적 잠재성은 사회적 혁신으로서 의미를 가질 뿐 아니라 새로운 직업과 노동형태를 창출함으로써 경제적 의미도 가진다.”고 밝혔다. 이 말은 문화예술을 보는 이명박 당선자의 철학과 관련된 말로 한마디로 추상적일 수 밖에 없다. 이른바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문화를 국가경쟁력의 잠재력으로 보는 시각이다.
문화산업면에서도 “예술의 역할은 산업경쟁력을 주는 잠재력”이라고 답했고 문화예산의 적정선을 묻는 질문에서도 “구체적인 재원조달에 대해 철저한 분석 없이 단순한 수치를 제시하는 식의 약속은 의미가 없다... 기업인들에게 저소득 계층과 문화예술 분야에 관한 자발적 기부문화를 촉구, 무엇보다 문화활동에 대한 민간지원 비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릴 수 있도록 노력 하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당선자의 말을 가지고 문화예술정책의 윤곽을 그려보면 별로 기대할 것 없을 것 같다. 역시 문화는 뒷전이고 경제가 앞서가는 꼴이 된다. 그러나 우리 헌법 제11조 1항을 보면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로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문화적인 삶을 기본권리로 국가가 인정하고 구체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에 그 권리를 국민 개개인이 보장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개발해 나가야 한다. 경제가 제일인데 왜 문화를 들먹이며 배부른 소리를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문화정책개발에 대하여 당당히 요구할 의무와 책임이 우리들에게는 있다.
문화정책이 바로 서고 국가가 이를 위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때 문화예술은 발전한다. 문화는 들러리나 장식품이 아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문화적 임금이라고 부르는 세종대왕이 재위시절 문화적 업적은 찬란하다. 과학성이 뛰어난 한글을 비롯하여 측우기, 혼천의, 해시계, 물시계 등의 과학기술에서 부터 갑인자, 병진자 등, 활자와 아악체계의 완성 등은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바라건대 먹고 사는 문제이니만큼 경제도 살려야겠지만 문화예술에 대한 것도 잊지 않기 바란다. 백범 김구 선생은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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