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식 한남대 유럽어문학부 교수, 대전문인협회장 |
그 뒷켠에는 오랜 세월 영화인들의 숱한 고난과 노력, 희생, 걸출한 공헌이 뿌리 내리고 있다. 임권택 감독이 세계적인 거장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도 `광야의 호랑이, `두만강아 잘있거라` 같은 작품을 만들면서 1960년대 영화의 영세성과 참담함을 체험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국산영화가 이즈음 심상치 않은 기류를 타고 있다. 소재확산, 마케팅 전략 현대화 같은 여러 해법이 나오겠지만 이 시대의 즐거움과 아픔을 연기하는 걸출한 배우가 흔치 않은 것도 거기에 한몫 거들지 않을지. 세대간의 정서편차를 보듬고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새로운 `국민배우`의 등장이 기다려진다.
따뜻한 카리스마, 아버지를 연기하다
한국 영화사에서 명멸했던 숱한 연기자 가운데 김승호(1918-1968)씨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그리 많지 않다. 김승호는 타고난 재능, 끝없는 연기욕심, 성실한 노력, 영화에 대한 진지한 신념 등에서 단연 별처럼 빛난다. 해방공간 이후 1950-1960년대에 이르는 기간 궁핍했지만 넉넉했던 우리 사회의 빛과 그림자를 탁월한 연기로 그려내면서 영화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면서 대중의 관심을 스크린으로 이끌어 냈던 것이다.
이제는 세계 유수 영화제 입상이 흔하지만 김승호가 영화 `마부`로 베를린 영화제 특별은곰상을 받을 당시 우리나라의 국력과 국제적 인지도, 영화계 여건 등을 감안할 때 이 수상은 우리나라 현대문화사를 대문자로 기록한다. 요즈음 아버지 역할로 인기를 얻은 이순재, 신구, 주현씨 등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김승호의 이미지는 일견 주착스럽고 실수연발의 고집불통 아버지상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는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 영(令)이 서는 아버지, 가족통합-조정의 명수인 아버지의 힘을 함께 보여준다. 속깊은 헤아림과 너그러움, 너나없이 고단했던 삶속에서도 현실을 긍정하고 향유하면서 속깊은 사랑과 내면의 고뇌를 천의무봉하게 연기하였던 배우였다.
死後 40년, 다시보는 김승호
`김승호 다시 보기` 는 우리 영화 발전을 위한 작고 영화배우 재조명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점차 사라지는 아버지의 당당한 권위와 역할이 새삼스러운 사회학적 측면에서도 필요한 때인듯 싶다. 김승호가 연기했던 1950-1960년대 아버지상이 그립다. 그런 아버지는 지금 어디 있는가. 이즈음 부권(父權)상실, 가족해체, 세대간 갈등 같은 혼돈속에서 언제나 거기 우뚝 서있는 아버지, 카리스마속에 담긴 속 깊고 너그러운 아버지 모습을 김승호의 연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상을 떠난지 올해로 꼭 40년. 이제 잊혀져가는 영화배우 김승호의 연기와 이미지가 스크린을 벗어나 가정으로, 사회로 확산될 만큼 우리는 지금 절실하게 `아버지像`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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