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정순 당진 고대초등학교 교사 |
그 아이 이슬이는 전교에서 세 번째로 학교에 일찍 옵니다. 첫 번째로 오고 싶지만 그 아이보다 더 학교에 일찍 오고 싶어 하는 5학년 형들 때문에 삼등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이슬이가 학교에 일찍 오는 것은 아침자습을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운동장에 나가 공놀이를 하려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그 아이가 학교 일찍 오는 것은 순전히 교무실에 오기 위해서랍니다.
교무실 문을 빠곰히 열고는 그 맑디맑은 눈을 간직한 얼굴부터 들여놓습니다.
그리고는 “떤댕님!”하며 달려와 재빨리 내 손가방 챙겨들어 교무실 문을 나섭니다. 오늘의 첫 번째 임무를 완수한 셈이요, 제일 중요한 임무를 완수한 셈이지요.
그 아이는 담임선생님 가방을 교실로 들어다 주는 일을 아주 좋아합니다. 친구들이 어쩌다 그 일을 대신 하려면 비호 같이 달려들어 낚아챈 다음 의기양양하게 교실로 가곤 합니다. 한 번은 짐짓 가방을 책상 밑에 놓고 모르는 척 했더니 금세 울상이 되어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 아이는 정신지체 2급입니다.
3학년임에도 불구하고 받침이 없는 쉬운 단어만 간신히 읽을 수 있고, 때론 바지에 깜박 실례를 하기도 하며, 더러는 조용한 공부 시간에 친구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괴성을 질러댑니다. 그러나 우린 모두 웃을 수 있습니다. 너무나 맑은 눈을 가졌기 때문이지요, 너무나 깨끗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지요.
첫 만남에선 그 아이가 망부석인줄만 알았습니다. 학습도움 반에 수업을 하러 가기 전까지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자기 세계에 빠져 눈만 끔뻑거리곤 했으니까요. 친구와의 대화도 되지 않았고 자신의 의사표현은 그저 ‘으`하는 소리만 낼 줄 알았으니까요.
일취월장(日就月將)이란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인가 봅니다. 그 아이는 많이 달라져있습니다. 혼자서 화장실도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종이로 접은 꽃을 부모님께 드릴 줄도 알고, 하교 때 일일 도움장 보다 앞서서 구령도 붙일 수도 있답니다. 물론 발음이 정확하지 않지만 우린 어떤 의미인지 다 알고 있지요.
요즈음에는 그 아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습니다. 방학이라서 그렇답니다. 그래서인지 내 가방은 하루 종일 제 자리만 지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나보다도 내 가방이 그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따라 불쑥 교무실 문을 열고 아침 햇살 머금은 이슬이의 두 눈이 달려와 “떤댕님!” 할 것 같아 자꾸만 문 쪽으로 마음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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