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천식 대전대 객원교수, 행정학 박사 |
장소는 도시의 특징을 나타내기도 한다. 해안도시, 산악도시가 있고 자연과 생태가 살아있는 전원도시가 있는가 하면, 고층빌딩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회색의 도시도 있다. 특정도시의 모습은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을 통해 우리가 만들어낸 우리 자신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콘크리트의 숲과 창백한 군중의 모습으로 상상할 수도 있고 다양한 외관과 색채가 있는 역동적인 도시의 모습을 그려낼 수도 있다.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고 도시의 이미지를 형성하며 도시 브랜딩을 하는 행위 또한 해당도시 구성원들의 몫이다. 관습과 문화, 경관의 창출까지도 의도적이던 자연발생적이든 간에 도시에 거주하며 도시와 이해관계가 있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마음속에서 생성된다.
최근 도시경관의 중요성이 재삼 강조되고 있다. 세계화와 과학기술의 발달, 이윤추구에 안달이 나는 현재의 경제체제 아래에서 획일성과 보편성이 강조되고, 도시의 고유성과 특성이 무시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도시경관의 차별적 조성이 당면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지방자치의 실시 목적에서도 알 수 있듯, 지방정부의 임무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주민복지 증진을 기하는 것이다. 또 자본과 고급인력을 유인할 수 있는 매력적인 경관창출이 최우선 과제 중 하나다. 먹고 살기 위한 호구지책이 최우선이던 개발 연대는 최소한의 도시기반시설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질적인 성장단계로 전환해야 하는 현시점에서는 외관과 색상, 심리적 안배와 선호도까지 고려돼야 한다.
도시경관 창출은 몇 가지 점에서 요건을 충족시켜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로 세계적 수준의 경관창출은 지역의 지리적 여건과 기후, 관습과 문화를 수용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국적불명의 타자지향적 경관 창출과 지역적 특성을 무시한 인공적 장소의 조성 등은 외면당하고 배척되는 도시의 모습을 만들어 낼 뿐이다.
지역민의 정서에 배치되고 지역주민의 기대치를 충족시킬 수 없다면 세계인 어느 누구에게도 매력적일 수 없다. 둘째로 도시경관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한다. 도시 이미지는 자연환경과 건축물, 도로구조물 등을 통해서도 형성되지만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보행인의 밝은 모습과 스치고 지나가는 자동차의 운전예절 등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 도시의 주요 구성원인 도시민의 행태와 생활양식 등이 외지인이나 방문객에게 강력하게 작용해 도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도시를 찾아온 외지인에게 베푸는 주인다운 넉넉한 배려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방문객에게 줄 수 있다.
셋째로 도시경관은 도시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의 균형과 조화로운 배치 속에서 매력적일 수 있다. 조성이 잘된 수목원과 그 자리에 둥지를 튼 새들의 여유있는 비상, 조용한 몸짓으로 산책을 즐기는 시민의 모습 등은 그대로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마음깊이 각인되는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이 될 것이다. 그러나 번잡함과 소음, 차량정체와 무계획적인 건물의 배치 등은 아름다운 도시를 훼방하는 방해요인이 될 뿐이다. 뛰어난 도시경관의 창출은 종합적인 관점에서 도시의 모습을 이루어내는 다양한 요소와 부분들을 놓치지 않고 고려할 때 가능할 것이며 상호 연관되는 맥락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장소는 인간의 생의 요소이며, 삶의 현장이다. 장소는 인간 정체성을 이루는 주요한 구성 요소로서 기쁨과 희망을 함께 나누고 낙담과 체념을 알게 해주던 바로 그곳이다. 미래도시의 번영과 성공은 장소의 감성과 차별성을 유지 복원하여 제대로 된 도시경관을 창출하는 데 있다. 장소에 대한 관심과 성찰이 확산돼 도시정책의 기준으로 자리 잡길 기대해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