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어느 하루의 ‘육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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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어느 하루의 ‘육보시’

최충식 논설위원

  • 승인 2008-01-17 00:00
  • 신문게재 2008-01-18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불교에서는 극락 가기 바라며 하는 희천시(希天施)도 동기 불순한 보시로 본다. 상대가 졸라 마지못해 하는 보시를 수지시(隨至施)라 한다. 포외시(佈畏施)는 의리나 체면으로 하는 보시이며 습선시(習先施)는 습관과 선례에 따르는 보시.


축의금의 상당수는 포외시와 습선시의 중간쯤이다. 은혜를 갚기 위한 보은시(報恩施)나 보답을 기대하는 구보시(求報施)까지 일단 불순한 보시로 본다. 요명시(要名施)라 해서 명성을 높이려는 목적의 보시도 있다.

그러면 대중적 지지와 인기를 먹고사는 정치인과 연예인의 봉사는 무엇인가. ‘라인업` 같은 특집과 태안 돕기 패션쇼는 순수한가. 이런 구분은 지난주 태안에 발을 내디디면서 쓸모 없어졌다. 닦이지 않는 기름자국과 퍼내도 줄지 않는 기름 고인 물. ‘태안 앞바다에 유출된 원유가 전 세계의 해양에 희석되었다면 피해는 크지 않았을 것`이라는 모 대학 논술 지문처럼 차라리 됐으면 했다.

청운대 역시 죽음의 바다였다. 종패를 넣고 굴을 기르던 사람들도, 하늘의 비단을 뚫고 비상하던 바닷새들도 없다. 물길은 있으되 배는 다니지 않고 바위를 뒤집어 길을 내는 포클레인의 굉음이 그 공백을 메웠다. 돌멩이 닦는 일과 찬란한 바다와의 인과관계에 대한 회의가 한가득히 밀려올 뿐. “아들아, 미안하다. 아버진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 간밤에 절명한 어민의 절망은 백 배, 천 배 더 짙었으리라.
그 짠한 바다에서 건진 것은 기껏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의미였다. 문자나 말에는 표현 못하는 한계가 있다는 바로 그것.

“말도 못하지요. 그저 막막해요.” 사고 유조선이 있던 바다를 가리키던 어민의 말처럼, 바다의 식생과 그들 삶의 정형은 분리하지 못한다. 먹을거리 널린 찬장이며 갯살림 꾸리는 공장인 바다가 죽어버린 이때, 불순한 보시란 없다. 노트북 두드리고 윤전기 돌리고 업무를 보던 손, 자녀들의 고사리 같은 손, 전체를 닦고 부위별로 닦고 틈새를 닦다가 어느새 도통한 기자의 손, 손들. 살생의 부메랑을 막는 의미 있는 몸짓들이다.

돌아오는 길, 서산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었다. 문자 그대로 마음(心)에 점(點) 하나씩 찍고 중도일보 직원들은 그 날 하루 도사가 됐다. 도(道)란 방법이며 실력 아니던가. 보시도 별건가. 밥 먹어주고, 애인과 가서 잠자주고, 수산물 지정 구매를 해주는 모든 것이 “앞날을 걱정하는 한숨이 태산보다 높은 태안 사람들”(의항2구 이충경 주민)에겐 보시다. 방제복 걸치고 걱정해주는 것으로도 보시다.

물때에 맞춰 하루의 육보시(?)를 끝내고 귀가하는데 바다가 힘겨운 비명을 질러댔다. 생명이 소거된 바다가 온몸으로 신호를 보낸 것이다. ‘태안`에 관한 봉사, 모든 보시는 순수하며 노벨상 감이라고 감히 우기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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