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동 박사가 12살 때 ‘삼인칭 단수’가 뭔지 몰라 애면글면 애태우다가 엄동에 30리 눈길을 헤치고 읍내 보통학교 교원을 찾아 들었다는 설명이다.
각설하고, 신문과 잡지에 글을 쓰다 보면 인칭이 마뜩찮을 때가 있다. 주로 ‘나’를 어떻게 표현할지의 문제다. ‘더 네이션’지에서 정치 칼럼을 뒤져 ‘I, me, myself’ 등 ‘나’를 표시한 단어를 조사해 순위를 매겨 보도했는데 칼럼 1회당 13.4회나 ‘나’를 당당히 적은 칼럼니스트가 1위를 달렸다. 그 다음 8.4회, 4.1회, 3.7회 순이었고 꼴찌는 0.2회에 불과했다.
자기 노출 기피와 단어 사용 공포증은 기자와 칼럼니스트의 한 속성으로, 주관의 객관화에 대한 불문율에 사로잡혀 빚어지는 현상이다. ‘나’ 자신을 ‘기자’나 ‘필자’로 쓰는 것은 글의 격조라든가 3인칭 시점으로 내 삶을 서술당하고 싶은 욕망에서가 아닌 것이다. 이게 싫어, 마음이 들어맞는 사람이란 뜻에서 회심자(會心子)라고도 해봤다. ‘필자’하면 내 얘기가 남 얘기같이 들리고 1인칭이면서 3인칭의 느낌을 받는다. 과다노출증과 과도한 자기은폐는 모두 문제다. 글 속에서는 ‘我(아), 吾(오), 予(여), 己(기), 小人(소인)’ 등 그 많던 ‘나’ 호칭이 사라졌다.
자기 지칭으로 ‘저(나)’를 비교적 자주 쓰는 편인 이명박 당선인의 14일 기자회견문에는 ‘나’의 복수인 ‘우리’가 13회 나왔다. 통치권자 입에서 나온 ‘저’에는 ‘본인’에 비해 공복(公僕) 관념이 더 들어 있을 것이다. 인터넷 시대의 말 생산 방식이 위로부터의 톱다운이 아닌, 밑에서부터 퍼지는 보텀업 방식인 점에 ‘필자’는 유의하면서, 국민(또는 독자)과의 온전한 소통은 권력이나 타성을 조금씩 해체하면서 ‘나’라는 1인칭 시점의 회복이 이뤄진 다음일 거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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