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희 대전가장초등학교 교감 |
대전역에서 울리는 기적소리를 들으며 연인들이 함께 걷는 낭만의 거리이기도 했던 그곳을 메마른 콘크리트로 복개해 버린데 대한 아쉬움의 글이었다. 이렇게 잃은 것과 얻은 것에 대한 조명으로 문명을 거슬러 오르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이따금 ‘향수`라는 것에 발길이 머무른다. 그래서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답다고 한다.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우리는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 또한 적지 않았다. 때로는 교직이 곧 터질 것 같은 둑을 막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어디선가 봇물이 터질 것만 같은 예감으로 교단을 지키는 사람들은 때때로 평형을 잃어버리곤 한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반추의 시간에는 늘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예전에는 그랬다. 철없는 20대 새내기 선생님이지만, 선생님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학생과 학부모는 옷깃을 여미었다. 봄이면 쑥을 뜯어서 선생님 몰래 자취방 부엌에 두고 가는 아이, 김장철이면 우리 선생님 드린다고 맛있는 겉절이를 가져온 아이, 30촉 전구 아래서 겉절이에 라면을 후루룩 불면서 꽃보다 예쁘게 웃던 아이, 가정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어둑어둑한 길이 걱정되는지 동구 밖까지 따라 나와서 오래도록 손을 흔들던 꼬맹이들….
그들은 지금 40대의 건장한 중년이 되었지만, 그 때 그 새내기 선생님과 아직도 세대를 초월하여 끈끈한 정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아날로그 정서를 가지고 있는 다수의 교원들은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의 대립 상황이 전개될 때마다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새 정부에 신문고를 울리고 싶다. 부디 온기 있는 교육이 되도록 해달라고. 교직이 사람을 만드는 위대한 업이 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보완을 마련해 주시기를 바란다. 채찍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던 상관없다. 교단에서도 이미 단단히 준비를 하고 있는 줄 알고 있다.
‘장미는 피어버린 꽃보다 봉오리가 더 아름답다.`(A rose too often smelled loses its fragrance.)라는 영어 속담이 있다.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피어버린 꽃이나 봉오리는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는 상황으로 회전해 본다. 피어버린 꽃은 역사라는 이름에, 봉오리는 창조라는 이름에 대입할 수 있듯이 결코 의미없는 소멸과 탄생은 없다고 본다.
무자년 새해에는 우리의 교육도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아름답게 조화되어 꽃보다 아름다운 성장이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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