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선]“내게 전화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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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선]“내게 전화하시오”

[시사에세이]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 승인 2008-01-14 00:00
  • 신문게재 2008-01-15 20면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한 통의 전화는 사람의 목숨도 바꿔놓는다. 국모의 원수를 갚겠노라고 일본군 중위 츠시다를 살해한 백범 김구는 사형이 확정돼 인천 감리소에 갇혔다. 독립신문에는 김구를 1897년 8월 26일 교수형에 처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사형 집행에 대한 고종의 재가가 내려진 뒤 우연히 김구의 죄명이 국모보수인 것을 알게 된 입직 승지가 이 내용을 임금께 보고하였다. 고종은 즉시 어전회의를 소집해 백범에 대한 사형 집행정지 결정을 내리고 직접 인천으로 전화를 걸었다. 사형을 집행하기 직전이었다. 서울과 인천 사이에 전화가 개통이 된 것은 불과 그로부터 3일 전이었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뻔한 백범을 전화가 살려냈다. 백범일지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언론학자들은 지난 천년간 인류가 내놓은 여러 업적 중에서 활판인쇄술을 가장 뛰어난 발명품으로 꼽는다. 출판된 책을 읽고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매일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하는 나는 그러나, ‘전화`야 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애틋한, 혁명적인 발명품이라고 생각한다.

공간과 거리로 인한 장애는 물론 시간지체의 문제까지도 전화가 거뜬히 해결해 준다. 벽으로 막힌 공간 너머의 사람, 너무 멀리 떨어져 눈을 감아야 겨우 보일 법한 거리 저편의 사람과 바로·지금·현재, 소곤거릴 수 있게 해준다. 전화는 말하는 입의 연장이고 듣는 귀의 확장이며 무엇보다 사람들간의 뜨거운 심장을 연결하는 미디어다.

얼마전 재벌 총수들을 만난 자리에서 새 대통령 당선자는 전화 이야기를 꺼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를 만들겠다면서 기업 활동에 애로가 있으면 당선자에게 직접 전화해도 좋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서울에서 발행되는 큰 신문들은 이 내용을 1면 톱 기사로 다뤘다. 기사의 제목도 ‘애로 있으면 내게 직접 전화를 걸어도 좋다` 였다. 하필이면 신문들은 왜 ‘전화하라`를 제목으로 뽑았을까? 언론을 통해서 전달되는 ‘직접 전화하라`는 메시지는 국민들을 으스스하게 만드는 제왕적 커뮤니케이션 양식으로 비춰질 수 있다.

당선자가 모티브로 삼은 ‘전화`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두바이의 모하메드 국왕이었다. 자신의 휴대전화로 외국인 투자자의 고충을 직접 들었다는 것이다. 최고 권력이 철권을 행사하는 제왕적 체제에서는 그러한 방식의 전화커뮤니케이션이 효과가 있을 것이다.

전화를 받는 당선자 뿐만 아니라 당선자에게 ‘애로전화`를 걸 수 있는 자격을 공공연히 획득한 재벌 총수들에게도 제왕적 커뮤니케이션의 떡고물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큰 신문들의 ‘전화이야기` 1면 보도는 직접 전화를 걸 수 있는 ‘그들`과 애로 전화의 고발 대상이 될 ‘그 밖의 우리들`을 갈라 놓는다.

우리 사회의 부정과 부패와 애로를 없애려면 무엇보다도 투명하고 합리적인 업무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져야 한다. 어느 수준의 조직에서건 전화를 걸 수 있는 소수를 공개적으로 특별 대우하는 형식의 커뮤니케이션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인들 역시 그러한 방식의 전화 독대를 통해서 기업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서도 안 된다. ‘너 그러면 전화할거야`란 겁을 주어서 관료들을 움직이게 하려는 메시지 생산에 언론이 팔 걷어붙이고 나설 일은 아무래도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방식의 문제점을 꼬집어야 한다. 비공식적인 속전속결의 문제해결 방식을 폄훼할 뜻은 없지만 더디고 서툴더라도 차근차근 다 함께 가는 시스템 커뮤니케이션의 가치를 살려야 할 때다. 당선자께서 전화로 ‘애로`를 들을 생각이라면 재벌 총수들에게만 ‘내게 전화하시오`라고 할 것이 아니라 단 세마디를 추가했어야 했다. ‘내게 전화하시오, 누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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