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 드라마평론가 |
조선시대의 엄격한 신분제도로는 결코 같은 자리에 위치할 수 없는 ‘왕`과 ‘서출`을 21세기 대한민국은 ‘영웅`의 이름으로 함께 호출한다. 조선시대 최고의 ‘성군(聖君)` 세종대왕과 백성의 고혈을 쥐어짜는 탐관오리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에게 베풀었던 ‘의적(義賊)`은 비록 출발점은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이 땅의 민초를 위해 살다간 영웅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백성을 위하는 삶을 살았던 ‘세종대왕`의 업적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문자 ‘한글`을 창조하고 노비 신분의 장영실을 중용하여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등 세종대왕의 업적은 대부분 백성을 위하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들이었다. 홍길동은 또 어떠한가? 적서차별의 실상을 고발한 허균의 소설 속 주인공 ‘홍길동` 역시 탐관오리의 실정에 신음하는 백성을 위해 도적질을 한 의적으로서 비록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조선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한 인물이다.
세종대왕과 홍길동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사극에 대한 시청자의 뜨거운 반응은 지금 우리가 원하는 영웅의 실체를 잘 보여준다. 고대사를 배경으로 한 일련의 사극들이 21세기 CEO형 지도자를 지향하긴 했지만, 그들은 피로 얼룩진 전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영웅들이었다. 그러나 2008년 새해 벽두부터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킨 세종대왕과 홍길동은 전쟁과 상관없이 조선 백성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한 영웅들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정통사극의 맥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의 대사와 영상 연출로 대하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대왕 세종`과 역사적 고증의 억압에서 벗어나 퓨전사극의 장점을 극대화한 ‘쾌도 홍길동`을 한 자리에서 언급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2008년 2월 25일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는 이른바 ‘국민을 섬기는 정부`를 표방하고 있다. 성군 세종대왕과 의적 홍길동이 그러했던 것처럼 새로운 정부가 얼마나 국민의 멍울진 상처를 어루만져주면서 삶의 질을 향상시킬지 두고 볼 일이다. ‘왕`과 ‘서출`이라는 신분 차이에도 불구하고, 또한 실존 인물과 허구적 인물이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조선 백성의 영웅으로 자리매김 되어 있는 세종대왕과 홍길동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부활하는지 지켜보는 재미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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