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앞바다를 검거 물들였던 검은 재앙이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넉넉했던 한 어부의 생명을 앗아갔다.
기름 유출 사고 이후 막막한 현실을 비관했던 60대 가장이 극약을 마신 뒤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10일 오후 7시47분 11시간의 사투 끝에 결국 숨져 충격을 주고 있다.
태안군 소원면 의항2구에 거주하는 고 이영권(65)씨는 기름이 유출된 태안 앞바다에서 굴 양식장을 운영해 생계를 유지해 왔다.
태안 토박이인 그는 이곳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굴 양식업을 하며 두 아들과 딸을 출가 시켰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7일 갑자기 덮쳐 버린 검은 기름은 이씨의 꿈과 희망 모두를 빼앗았다.
평소 마을 일을 떠맡아 주민들에게 성격 좋기로 소문난 그는 한 달여 넘게 기름 제거에 나섰지만 떠내도, 떠내도 줄지 않는 기름에 마음을 졸여왔다.
▲ 태안 앞바다에서 굴양식장을 운영했던 고 이영관(65세)씨가 10일 오후 기름유출 사고로 현실을 비관해 극약을 마시고 11시간의 사투 끝에 태안군보건의료원에서 숨을 거두자 유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특별취재반 |
굴 양식장에서 한 해 평균 3000만원의 소득을 올렸지만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기름에 앞에 살길이 막막했던 것. 마을 인근에서 부업으로 농사를 지었지만 수확량이 15가마니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첫째, 둘째 아들과 딸에게 보내면 남는 게 없었다.
그러던 이날 오전 9시께 마을 주민들 모두가 기름 작업에 투입된 시간에 그는 기름 작업을 포기한 채 수십 년 동안 살아왔던 자신의 허름한 개량 주택에서 제초제를 음독해 자살을 시도했다.
목숨을 끊을 것을 결심한 뒤 결혼을 앞둔 둘째 아들 이은규(37)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농약 반병 가량을 이미 음독한 상태였다고.
이씨와 형 동생처럼 가깝게 지냈다는 이병혁(76)씨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이미 농약을 마신 상태였던 것 같다"며 "눈을 감기 전 둘째 아들이 크게 걸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평소에도 결혼을 앞둔 둘째 아들에게 전세하나 못해줘서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울먹였다.
같은 마을에 사는 이태윤씨(61)는 "일도 잘하고 아픈 적이 없을 정도로 부런지 한 분이었다"며 "3일 전부터 바다가 죽어서 어떻게 먹고 사느냐며 걱정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주민 김봉두(63)씨도 "숨진 이씨가 우리의 생명줄인 바다가 이 모양인데 우리가 무슨 힘으로 살아가느냐고 걱정을 많이 했다"며"기름유출 사건만 없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경찰은 이씨를 발견할 당시 극약이 담겨져 있던 것으로 보이는 병이 옆에 놓여져 있었고 원유유출 사고 이후 "우리는 이제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느냐"고 자주 말해왔다는 가족들에 말에 따라 이번 유류유출 사고로 처지를 비관해 음독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확한 사고경위 등을 조사 중이다.<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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