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구 변호사 |
서산을 지나 태안에 들어서자니 지역주민들이 내걸은 듯 한 현수막들이 눈에 들어온다. 자원봉사자들의 노고에 감사의 뜻을 표하는 내용의 현수막과, 정부와 사고 관련 기업을 성토하는 내용의 현수막이다. 만리포 해수욕장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니 역한 기름 냄새가 코를 찌른다. 우리 나라 역사상 최악의 유조선 기름유출사고 현장에 온 것이다.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 30분경 충남 태안군 만리포 북서쪽 5마일 해상에서, 삼성중공업 소속 해상크레인을 적재한 부선이 정박 중인 홍콩선적 유조선 ‘허베이 스프리트`호와 충돌하면서 유조선에 3개의 구멍을 내어 약 1만 5천 톤의 기름이 해양으로 유출됐다.
이는 지난 1995년 여수 앞바다에서 있었던 ‘씨프린스`호 사고 당시 유출된 기름의 3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일단 방제작업에 최선을 다 해야 하겠지만, 이번 사고는 크게 두 가지 과제를 던져주었다. 생태계의 복원과 사고지역 피해주민들의 피해복구가 그것이다.
이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고의 경위와 원인을 명백하게 밝히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사고의 경위와 원인을 밝히지 않고 내 놓는 사고수습책은 설득력이 떨어질 것임은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번 기름유출사고에 대한 대책이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1989년 알래스카 만에서 있었던 유조선 ‘액슨 발데즈`호의 원유유출사고 당시 방제비용으로 약 35억달러(원화 약 3조5천억원),주민피해보상금으로 약 50억달러(한화 약 5조원)가 소요되었음에도 해양생태계가 원상복구되기 위해서는 30여 년이 걸릴 것이라는 보고가 있었다. ‘액슨 발데즈`호의 경우는 유출된 원유량이 약 4만톤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사고였지만, 이번 태안 기름유출사고 역시 유출된 기름의 양이 ‘액슨 발데즈`호의 40%에 달하는 대규모 재해였다. 벌써부터 환경전문가들은 태안 앞바다가 원상복구되기 위해서는 몇십년은 걸릴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지 않은가.
필자는 태안 사고를 과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고의 중대함을 바로 보고 당장 코 앞의 것만 해결하는 미봉책은 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따름이다. 현지에서 만난 한 숙박업소 주인은 필자에게 정부가 우선 피해상황을 조사하여 피해 전부를 보상하고 이후에 보험회사나 사고기업을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며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대처를 바라고 있었다. 그만큼 피해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현재 지역 주민들의 생계가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음을 알게 하는 주장이다.
이번 사고의 피해회복을 위한 적용법률을 살펴보면 민법,상법,유류오염손해배상보장법,선박소유자등의책임제한절차에관한법률 등이 있다. 이러한 현행법 체계에서 완벽한 생태계회복 정책과 피해회복방안이 가능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선뜻 긍정적인 답을 내리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비수산업에 종사하는 지역주민들의 경우 그 피해액을 어떻게 입증하여 배상을 받을 것인가. 그리고 피해가 한두 달의 경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길게는 10년 이상 지속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장기간의 피해지역 경기침체와 이로 인한 지역 주민들의 소득감소를 현행법상 모두 피해배상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인가.
더군다나 생태계의 복원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예산을 토대로 한 끈기 있는 복원작업이 이루어져야 하는바, 해당 지방자치단체에게 떠넘길 수도 없고 일상적인 기구로 이를 감당해 갈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러한 여러 문제를 고려해 보면 특별법을 제정하여 처리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안으로 보여진다. 다행히도 지방자치단체에서 특별법 제정을 중앙정부에 건의했다고 하며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미봉책에 그치는 것이 아닌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있는 특별법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의사결정과정에 지역주민들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함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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