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억중 건축가·한남대 교수 |
나는 삶의 진실이 몸에 밴 그들에게서 집이 무엇이며 좋은 집은 어떠해야 하는 지, 대놓고 물어보려 했다. 그들은 집에 대한 꿈과 그리움, 집으로 인해 받았던 억압과 상처를 어떻게 느끼고 견디어 내었는지 진솔하게 말해 주었다. 나는 집과 더불어 야기되는 일상의 풍경들이 그들의 삶 속에 저마다 소중한 감동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가슴 속 깊이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문학 속의 집은 겉모습이 그럴 듯한 집보다 삶의 내실이 튼튼한 집이 훨씬 더 값어치 있는 지를 웅변하고 있었다.
나는 문학이라는 오래된 명경 속을 들여다보면서 자칫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진실들,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있어 그대로 바라다보지 못하는 현상의 이면들, 세태의 흐름에 묻혀 미처 되새기지 못했던 본래의 의미들을 다시 살펴볼 수 있었다. 그 속에는 집에 대한 이해, 가치와 사고방식이 리트머스 시험지에 묻힌 시약처럼 정직하게 녹아들어 있었다.
그렇게 문학을 통해 얻어낸 소중한 교훈들은 어느 날인가 세상 밖으로 부름을 받아 인연이 닿는 집안 구석구석에 제법 향기 짙은 꽃으로 피어나기도 한다. 설계를 하면서 나는 `이 방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 벽은 어떠해야 하는가?` 라고 끊임없이 묻곤 한다. 그렇게 하늘에 묻고, 땅에 묻고 사람에 묻다보면, 그 틈새마다 시인들이 내 가슴 속에 흩뿌려놓았던 씨앗들이 저마다 움트느라 웅얼거리기 시작한다. 그 수런거림이 굳건한 동기가 되고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 어느새 건강한 집 한 채를 떠받치는 기초가 되고 기둥이 된다.
늘 다짐하는 말이지만, 현실에 뿌리내린 문학적 상상력 없이 어찌 방다운 방 하나를 제대로 구축해낼 수 있겠는가? 모양이야 그럴 듯하게 꾸릴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모순으로 그득한 현실을 비판하고, 성찰하며 전망하여, 마침내 `삶의 형식과 내용`까지 재구성해 내는 일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그러고 보면 문학과 건축은 같은 길을 가는 도반이나 다름없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동무가 되어주고 경륜을 더해가며 교제할만한 맞상대인 것이다. 내겐 문학이 있어 괴롭고, 슬프고, 고맙고, 행복하기만 하다. 그 우여곡절의 한 복판에서, 내 딴엔 집다운 집의 진면목을 살펴보느라 늘 여념이 없다. 그 둘 사이야말로 녹녹치 않은 세상살이, 부박하기 그지없는 세태를 거스르며 삶의 지표를 부단히 증거 해야 하는 공동운명체가 아니겠는가?
문학과 건축의 동상이몽(同床異夢)! 그 둘을 곱게 접어, ‘그 자리, 그런 집`이 뚜렷이 찍힌 데칼코마니를 완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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