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도에서 이해하면 미인대회 심사위원의 평가도 권력이며 남녀 차별 사회라면 남자가 권력자다. 사람은 자신의 환경을 구성하는 ‘조개껍데기`에 둘러싸여 산다 하듯이 우리 일상은 집과 일터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 작은 나라의 사장님도 권력이다.
정상과 비정상은 누가 권력을 잡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이 그렇다. 대운하 프로젝트, 작은 정부-큰 시장(市場) 논리에서도 그렇다. 큰 정부는 타율의 확대, 작은 정부는 자율의 확대를 의미하지만 줄이고 없애는 ‘다운사이징`에 있어서는 효율성이 그 기준이어야 한다.
이건 상식적인 평균이 아니다. 표면적으로 지난 선거는 진보보다 보수, 보수보다 실용을 선택한 것인데, 뜯어보니 10년 전 보수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이 진보의 손을 번쩍 들었다면 이번엔 중도.진보 성향 표심까지 가세해 무능한 진보의 팔을 꺾었다. 그렇다고 진보가 하루아침에 용도폐기되어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보면 오산이다.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건 아무도 머리를 안 쓴 것이라고 월터 리프만은 썼다. 저간의 결과에도 불구, 이념적 스펙트럼은 ‘3(보수) 대 4(중도) 대 3(보수)`라는 시각이 있다. 그리고 소망과 체념은 대략 반반씩이다. 힘을 싣자는 여론과 견제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만만찮은 여론.
대선 직후 케이블TV 대담 말미에 당선자에게 바라는 말을 묻기에 필자는 “표를 주지 않은 사람들의 한숨과 눈물까지 대통령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한사코 환기시켰다. “허물 알고 찍었다”는 한국주식회사(Korea Inc.) 사람들도 많다.
하여 지금은 지난 시절에 대해 물구나무를 세우기보다 편견에 물들지 않은 섬세의 정신과 균형감각이 더 요구되는 때인지 모른다. 참여정부가 잘못했고, 대선에서 이겼고, 잇달아 거듭 총선에서 이긴다 해도 정상과 비정상을 너무 애써 구획하는 것이 비정상일 수도 있음을 새로운 5년, 명심 또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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