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범사례가 열하일기였다. “문풍(文風)이 이리 된 것은 모두 박지원 죄”로 못박은 정조는 안팎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베스트셀러 『열하일기』를 친히 읽고 경고까지 먹였다. 천안삼거리 능수버들처럼 발랄한 박지원의 문체를 닦달해 반성문을 쓰게 한 것이다.
지금이 국정홍보처라면 그때는 규장각이 있었다. 규장각의 프리즘을 들이대 이단적 사유를 질식시켜면서 정조는 개혁군주에서 절대군주 쪽으로 돌아섰다. 그래도 왕의 문체 관여에 반발한 이서구 같은 사람이 있었다. 복분자를 따려면 가시에 찔릴 수 있다는 대통령의 말에 춤추던 국정홍보처는 존폐 기로에 놓여 있다.
비위 거슬리는 언론을 대통령은 불량상품으로, 왕은 괴이한 잡문체로 불렀다. 이것도 닮았다. 또 똑같이 정치와 문장의, 국정홍보와 언론의 일치를 착각했다. 대통령 당선자가 취재 선진화인지를 폐지한다는 마당에 ‘취재 지원에 관한 기준`이 발효됐다. 바로 그제(26일) 일이다. “국민이 몽둥이 들고 청와대에 안 쫓아오는 것만도 다행”이라며 아직 언론 탓인가. 묻고 싶다.
문체반정이나 취재 선진화의 마지막 공통점은 보이지 않는 것과 숨겨진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자폐적 자기부정이다. 18세기 르네상스 실패나 민주화 2기의 실패는 이 폐쇄성에도 기인한다. 정권의 마지막 등성마루를 내려오는 대통령이나 정권의 푸른 초장에 막 도착한 당선자나 겸허하게 반추해볼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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