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기는커녕 나이 먹을수록 세월에는 속도위반 개념이 없다. 물리적 시간과는 다른 심리적, 생리적 시간이 존재한다. 수술대에서의 3분과 애인과 초콜릿 같은 밀애를 나누는 3분이 어찌 같겠는가. 시간 생물학이라는 것도 없는 바가 아니다. 몸 어딘가에 시계와 같은 무언가가 있어 때가 되면 기별하는 배꼽시계를 연상해도 좋겠다. 국내 한 과학자는 식물 생체시계 조절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밝혀내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잠이 오게 하는 것과 같은 생체시계를 조절하는 화학적 스위치를 찾아냈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 생체시계와 함께 인간의 시간관념이 전승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석기시대 제례 행사장인 영국의 스톤헨지<사진>를 보면 확신으로 굳어진다. 무려 28톤짜리 거대한 돌덩이 중 일부는 290㎞ 떨어진 채석장에서 옮긴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 그곳이 하지와 동지, 춘분과 추분을 알아내는 등 달력 구실도 했다니 그 지혜가 놀랍고 선사시대 사람들조차 시간관념을 갖고 살았다니 그 생각에 숙연해진다.
옛날 궁중의 나인들이 책력을 될성부른 서방님, 도련님들에게 돌렸다. 미리 인심 쓰고 후에 잘되거든 이자 쳐서 고봉으로 받자는 보험이었다. 한데 모를 게 사람일이라, 꼭 잘된다는 보장은 없다. 눈 빠져라 기다려도 소식이 없으면 흉을 보기 일쑤였다. 도둑놈, 달력 도둑놈 (역적.曆賊)이라고 말이다. 웃음 한 스푼 입가에 매달리게 하는 옛이야기다.
필자는 흘러간 날과 남은 날이 동시에 표시된 달력을 보며 한 해를 보냈다. 12월 21일은 355일 지나고 10일 남았다고 적혀 있다. 똑같은 걸로 내년 달력을 구했다. 시간을 아낀다고 아꼈지만 생체시계에는 잘 맞추지 못했다. 매순간을 아껴 최소한 달력 도둑은 면해야겠지만, 잘 때는 자고 먹을 때 먹고, 시계 유전자와도 잘 지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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