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중겸 건양대 석좌교수 |
대부분, 아니 모두 다 지키지 못 한다. 장논길 군과 유품위 군과 나수줍 군과의 저녁에서도 그랬다. 거나해졌다. 그 중 한 사람에게 사기꾼이라 했다. 느닷없이 그렇게 불렀다. 딱히 뭐 가슴에 담아 둔 감정도 없을 터였다. 아마도 오래 동안의 격조가 그런 감정을 격발시켰나 보다. 하지만 지나친 표현이었다. 뉘우쳐도 푼수는 이미 돼버린 뒤였다. 잔정 탓이다. 속으로야 죽이고 싶도록 내가 미웠을 게 틀림없다. 그런데도 웃음으로 응대해 주었다. 이래서 저녁 자리 피하려 한다. 음주한다. 길어진다. 실언하고 실수한다.
미루고 미루다 곰나루에 갔다. 그곳에는 충호 군과 재호 군과 재숙 군이 있어서였다. 뜻밖의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을 내내 해보고 싶었던 낙엽 밟기를 드디어 성취했다. 고속버스를 내렸다. 은행나무가 샛노란 옷을 입고 기다렸다. 길가에는 그 잎이 수북이 쌓였다. 남산 오가며 꼭 밟아 봐야지 했었다. 못 했다. 여기서 그 촉감 느낄 줄 몰랐다. 특강이랍시고 얘기는 했다. 다 아는 내용을 중언부언 하고 말았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횡설수설이었다. 들어준 인내심이 오히려 고마웠다. 졸지도 않았다. 경청하느라 힘들었을 터이다.
점심은 더 가관이었다. 단단히 마음 붙잡고 갔었다. 낮술은 절대 안 된다며 내려갔다. 웬 걸 처음부터 폭탄주를 돌렸다. 제조도 잘 하네 하면서 쭉 단숨에 들이키곤 했다. 그래도 후회되지는 않았다. 단비 군과 철기 군과 같은 미래 주역이 있어서다. 맑고 밝은 모습 봐서다. 재금 군도 있었다. 비단강 강가에서 함께 회식한 기억 되살려 주었다. 선물이 푸짐했다. 신나기만 했다. 게다가 후배들을 본 흐뭇함 또한 기분을 날게 만들었다. 고향 굳건히 지키고 있는 귀한 인재들을 만나서였다. 귀로가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편지를 도저히 낼 수 없었다. 보내온 포도가 참 맛있었다. 올 여름 먹은 것 가운데 최고였다고 감사 겸해서 한 번 보냈다. 그걸 읽고서는 퇴근 후 밤늦게 또 가져왔다. 정성이 너무 고마웠다. 어려운 시간 내서 다시 올까 봐 아예 연락하지 않았다. 2007년도 이렇게 간다. 정 잔뜩 받고나서는 정 조금 보냈다. 말로 받고 되로 받은 한 해였다.
마음의 Thank you! 창고에는 받아둔 배려가 쌓여 있다. 수북하다. 빚돈 같은 부담감은 없다. 그러나 재촉은 한다. 많이는 못할 지라도 받은 만큼은 베풀며 살라 한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발전해 나간다. 이에 발맞추어 합당한 몫이 고루 분배되었으면 한다. 추운 사람에게 따듯함이 주어지고 더우면 시원함이 주어졌으면 한다.
일상이 덜 고단했으면 한다. 꿈만 지녀도 삶이 힘들지는 않다. 희망이 살아 숨 쉬면 절망은 없다. 취직이 되기를 기원한다. 승진도 돼야 한다고 보는 인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세상 앞서 간 선배는 몸담았던 곳에 마음 뺐긴 사람이다. 고향이다. 되찾아 올 수도 바꿀 수도 없다. 밉건 곱건 애착에 빠져 산다. 그저 잘 되기만 바란다. 내리사랑이다.
인철 군의 꿈은 간단명료하다. 경감 돼서 지구대장 하기다. 되리라 믿는다. 세월 삭혀 낙엽 된다. 땅에 스며들어 거름된다. 언 땅속에서 꽃 피울 준비한다. 매화를 선물할 날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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