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철중 대전문화예술의전당 후원회장 |
그러나 가족이 함께 즐기기에는, 마치 신년음악회의 시트라우스 왈츠처럼, 차이코프스키 발레곡 호두까기 인형을 대신할 것이 없다.
큰 애가 크리스마스 때면 보여 달라고 조르던 것이 1977년 판 레저디스크 호두까기였다.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전성기에 안무 감독에 주연까지 맡은 명반이다. 이제는 엄마 대신 여섯 살 외손녀의 단골 신청곡이 되었다. 차이코프스키가 미국여행 이듬해에 작곡하여 1892년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극장에서 초연된 이 발레곡은, 클래식 팬에게 한 해를 보내는 통과의례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지난 14일 대전문화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금년의 통과의례는 유니버설 발레단의 공연이었다. 2004년은 8월의 페테르부르크 아이스발레단 공연, 2005년 연말은 서울발레시어터의 고아원 버전이었는데, 음악은 셋 모두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플레이 백이었다.
앰프시스템이 주 종목이 아닌 아트 홀이기에 1막 일장에서 한동안 날카로운 쇳소리를 견뎌야했지만, 녹음음악이 어쩌면 다행일수도 있다. 한 사람 머리에서 나왔다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현란하고 다양한 멜로디는, 관객들의 집중력을 눈에서 귀로 빼앗아가서, 자칫 발레를 눈감고 듣는‘도난사고(Steal the Show)`의 우려가 있으니까... 관현악단 동반이 힘든 우리 형편에 자기위안도 섞였지만, 그의 3대 발레곡 중 호두까기는 그만큼 멜로디의 아름다움이 뛰어난다.
특히 프리마돈나 황혜민의 카리스마 넘치는 발레는, 바리시니코프가 독점(?)했던 관객의 시선을 바로잡아, 그녀와 엄재용의 파드되(pas de deux)는, 프로골퍼의 스윙처럼 어려운 동작을 쉽고 편하게 보이는 마술을 연출하였고, 당연히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이 공연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유니버설의 열정은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 아트홀을 만나 윈·윈(win·win)의 상승효과를 일으켰다. 전당의 강점을 보면 첫째, 300명이 동시출연 할 수 있는 넓고 깊은 무대다. 발레리나들이 마음껏 기량을 발휘하여, 한사람 한사람의 개성을 살리면서 전체적인 통일과 조화를 이룬 군무는 단연 압권이었다.
둘째, 각각 1톤의 중량을 매달 수 있는 48개의 배튼은, 소나무 숲 장면 등 입체감 깊은 무대를 순식간에 만들고 전환시키는 기본시설로서, 이를 십분 활용하여 원작의 환상적인 동화분위기를 충분히 창출해 내었다.
사흘 내내 매진을 기록한 관객들의 태반은 가족동반이었다. 호두까기는 크리스마스이브의 가족파티와 소녀의 하룻밤 꿈과 마술을 칵테일 한 동화(원작: 호프만)이기에, 전편에 걸쳐 온 가족이 즐길 화려한 축제분위기가 충만하고, 발레로서의 완성도 보다 관객들을 발레로 이끄는 친화력이 돋보이는 행복이 가득한 작품이다.
훌륭한 공연을 선정한 전당과 유니버설 발레단, 그리고 전당후원회의 초대에 호응해준 80여명 회원들께 감사드린다. 이번 기회를 놓치신 분들에게는 2008년 자녀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추억 만들기`를 꼭 기약하시도록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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