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영 대전노은고 교감 |
그러나 문득 나도 모르게 혀를 차는 경우가 있다. 급식 후 잔반통에 쏟아 붓는 하얀 쌀밥, 등굣길에 아이들이 받아 바로 버리는 좋은 지질의 학원 선전용 공책, 그리고 수업 중인 교실을 순회하다가 환히 켜진 화장실 전등을 끄면서. 값비싼 반찬을 버리는 것보다 하얀 쌀밥이 더 아까운 마음이 비합리적임을 알면서도 생각이 쉽게 바뀌지 않음은 궁핍한 성장기를 보낸 세대인 탓일까?
누렇고 잘 찢어지는 공책을 쓰며 자란 나는 하얗고 매끈한 종이를 보면 아직도 마음이 설렌다. 그러면서 쉽게 싫증내며, 생각 없이 버리고, 잃어버리고도 찾지 않는 아이들의 습관을 바로잡을 교육적 대책이 없는 현실적 한계에 하릴없이 탄식하면서도 급식량이 많으면 조금 덜어 먹고, 학원 선전용 공책은 연습장으로 쓰고, 밝은 낮에는 전등 켜지 말거나 켰으면 반드시 끄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은 강박관념처럼 늘 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실상은, 여명과 함께 등교하여 9교시 수업에, 쉬는 시간 각 10분, 점심시간 60분, 청소시간 20분의 여유가 주어진 하루 시정 속에서 시간이나 효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구실로 아이들의 절약교육을 놓아버리고 있음을 자인한다. 여건 탓하고 미루는 일은 교육을 담당한 사람으로서 용인 받을 사안은 아니지만 저녁 식사 후 바로 야간자율학습을 시작하여 밤 10시에 승합차 타고 귀가하는 아이들에게 물건을 아끼고, 불필요한 전등은 꺼야 한다고 강조하기 어려워 결국 절약교육은 10분으로 한정된 담임선생님의 조회 종례 시간이나 관련교과의 몫이 되고 그것도 다른 긴급한 내용에 밀려 공허한 전달사항이 되고 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렸을 적, 어머니는 낭비가 많고 게으른 내 소행에 늘 혀를 차며 걱정하셨는데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들의 생각 없는 소비성향을 보며 이제는 내가 마음이 몹시 불편하다. 자원 고갈이나 자원부족국임을 굳이 내세우지 않더라도 절약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선생님이 함께 체득시켜야 할 중요한 덕목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내가 자랄 때는 하얀 쌀밥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고, 몽당연필에 대나무를 끼워 썼노라`는 어른들의 경험담을 무능력에서 오는 궁상이나 전설적 이야기로 치부하는 요즘 아이들이 진정 아까움을 느껴 모으고, 오래 두고 다시 쓰도록 하는 보다 효율적인 정신교육을 가정과 학교가 함께 펼쳤으면 하는 바람은 당위성은 있되 현실성이 다소 결여된 생각일지 모른다. 그러나 꼭 시작해 보리라는 결심으로 새해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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