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위원 |
만약에 무사시의 시각에서라면 태안 앞바다에 닥친 국내 최대의 해난 재앙은 처음부터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을 것이다. 충돌 위험을 알리는 레이더 경보도 무시되어 사고가 불가항력이 아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바람 예측은 빗나갔으며 기름 유출 속도를 헛짚었다. 국가방제능력이 1만6900톤이라던 발표대로면 발생 사흘 안에 기름이 말끔히 걷혔어야 한다. 뭘 믿고 큰소리쳤는지 장비, 시스템 지휘통제, 실제 방어능력 모든 것이 부실했다.
그러나 태안 사태를 보니 연습 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국가위기관리가 빠르게 정착 단계라는 해설과는 판이하다. 쓰레받기와 양동이가 동원되는 현장에서 헌 플래카드나 흡착포가 첨단장비에 들어가니 분뇨수거차 호스로 기름 뽑자는 소리가 안 나오면 이상하다. “대규모 해양오염에 대한 국가방제능력 제고와 방제지휘체계 확립 필요성을 일깨웠다”는 국정브리핑 표현이 실제 상황으로 다가온 것이다.
허점은 14만톤급 유조선에 뚫린 구멍을 나무 쐐기로 막는 과정에서 가장 적나라했다. 조치가 이뤄진 시점은 파도 때문에 작은 어선→저인망 어선→해경 경비정→예인선으로 바꾸며 우왕좌왕하다 이틀이 지난 다음이었다. 30년 전 프랑스에서 22만톤급 유조선이 좌초됐을 때 예인선을 빌리는 협상을 질질 끌다 실린 기름이 모두 바다에 유출된 일을 떠올리게 한다. 시스템이 작동했는지, 시스템이 존재하기나 했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이 순간도 유조선은 한반도 해역을 떠다닌다. 지구 전체 바다에서 크고 작은 기름 유출 사고가 매년 1000여건 발생하고 100만톤 가량의 기름이 사고나 운송 도중 샌다. 너무 큰 대가를 치렀지만 소 잃고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무사시도 오륜서에서 연습을 강조했다. 잘 연습해야 한다고 했다. 다시 연습하자. 전혀 다른 연습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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