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선 충남대 교수 |
애절한 목소리로 지지를 호소하는 방송연설을 중계하고, 연예인 뺨치게 실감 연기하는 후보들의 정치 광고를 내보냅니다. 텔레비전이 정치 선거의 핵심적인 수단으로 부상한 것은 세계적인 현상입니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1994년 제정된 공직선거법으로 인해 그 역할이 한층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지난 13여년간 스물여덟차례나 개정되었다고 하는데요, 특히, 텔레비전의 후보자 토론을 활성화시키려는 개정작업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이번 선거에서 텔레비전이 꽃을 피우는데 일조하기는 커녕, 자칫하다가는 꽃대마저 꺾어버릴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게 만듭니다. 각 방송사가 토론회를 개최하는 과정에서 초청받지 못한 후보들의 강력한 저지로 토론회가 무산되기도 하고, 초청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은 후보에 의해 토론회의 맥이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러 ‘토론`이라기보다는 후보자의 일방적인 ‘홍보`라고 여겨지는 프로그램도 없지 않습니다. 선거법에 의한 합동토론회는 ‘기계적 공정성` 논리에 밀려 일정한 발언을 순서대로, 기계처럼 쏟아내게 하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합동토론회는 심층적이지 못하고 유익하지도 않으며 재미조차 없습니다. 텔레비전 토론회가 유권자들의 정치적 냉소와 무관심을 해소시켜주거나 실질적인 정책정보 획득의 통로가 되고 있지 못한 듯합니다. ‘군대축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방송해도 이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토론회를 비롯한 텔레비전 선거보도의 이러한 문제가 우리나라 정치문화와 정당구조에서 비롯됐다는 지적, 선거법을 손질해 후보들이 자유롭게 토론을 하게 만들자는 제안에 대해 공감합니다. 돈을 묶어서 선거의 부정을 방지하고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현행 선거법은 오히려 후보와 유권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렸습니다. 선거를 위해 공정성이 필요한 것일진대, 현행 선거법의 구조는 공정성을 위해 선거가 희생양이 된 듯합니다. 헌법재판소에 의해 가장 표현촉진적인 매체로 규정된 인터넷 공간 역시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인터넷상의 정치적 표현을 억압하는 규제들도 합리적으로 개선돼야하겠지요.
그러나 선거에 즈음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문의 역할일 것입니다. 한국의 매체산업에서 신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작아지고 영향력 면에서도 그 위상이 과거와 다르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신문은 선거 후보자의 이념과 정책에 대한 정보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상세하게 평가해서 유권자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이고 유용한 장치입니다. 또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일축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반 스트레이트 기사는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다루면서 사설이나 칼럼을 통해 특정 후보자에 대한 그 신문사의 정치적 지지를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외줄 타는 광대처럼 그 때 그 때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음성적이고 편파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신문사의 이념에 부합하는 정당과 후보를 자유롭게 선택하고 공개적으로 지지 표현함으로써 유권자들에게 후보 선택의 준거를 제시해 줄 수도 있습니다.
영상매체의 이미지 정치에 의해 왜곡될 수 있는 선거문화를 선진화하기 위해서는 신문이 주춧돌 역할을 해주어야 합니다. 물론 신문이 국민에게 더 많이 읽혀야하고 더욱 돈독한 신뢰를 얻어야하며 신문 종사자들은 직업윤리 규범이 요구하는 수준의 농밀한 전문성을 갖춰야 할 것입니다. 지난한 일이 될 수 있지만, 그러한 기대조차 없다면 대의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삶의 미래가 너무 불투명하고 불행하지 않겠습니까? 신문 종사자 여러분, 더 많이 읽힐 수 있는 신문을 만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독자 여러분, 신문을 읽지 않는 주위 분들에게 함께 신문을 읽어보자고 권해주십시오. 그래도 신문이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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