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나경]상트 페테르부르크 그 백색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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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나경]상트 페테르부르크 그 백색의 추억

[문화초대석]최나경 플루티스트

  • 승인 2007-12-09 00:00
  • 신문게재 2007-12-10 20면
  • 최나경 플루티스트최나경 플루티스트
▲ 최나경 플루티스트
▲ 최나경 플루티스트
뼈속까지 파고든다는 추위가 바로 이런 거구나 하며 종종걸음을 재촉한다. 나름대로 겹겹이 옷을 껴입고 나왔는데도 온몸이 시리다. 두꺼운 모자와 얼굴까지 둘둘 감은 목도리 사이로 나온 두 눈을 자꾸 꿈뻑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눈물조차 다 얼어버리는 것 같다.

지난 겨울, 그렇게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만났다. 연주를 하게 될 그랜드 필하모닉 홀까지 정말 가까운 거리였는데도 혹독한 추위 속에서는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통과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뉴욕에서 출발해 비엔나에서 모차르트 레코딩 세션을 마치기가 무섭게 프라하로 이동해서 모라비안 심포니, 체코 필하모닉과의 연주를 거친 후, 직접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장기간 여행에 몸은 지쳐있었지만, 오랫동안 동경해왔던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과 연주한다는 기대와 설레임에 비하면 잠시의 피곤함이나 영하 35도의 추위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전설적인 지휘자 예브게니 므라빈스키가 다시 일으켜낸 구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마에스트로를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함께한 역사적인 레코딩을 많이 소장하고 있던 터였다. 특히 그들이 빚어낸 시벨리우스의 `투오넬라의 백조`는 들어본 어떤 연주보다도 가장 애절하고 슬픈 우수에 가득 찬 명연으로, 타국에서 적적한 마음을 달래주곤 한다.

이런 날씨면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장엄한 무대로 등장하는 순간 그런 생각은 가차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객석이 매진이어서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일어나 환호를 보내는 관객들에게 커튼콜을 다섯번 받고 앙콜까지 연주해주었다. 무대 밖에서는 러시아어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적어도 무대에서는 누구하고나 음악적 영감을 나눌 수 있다는 데 왠지모를 뿌듯함과 함께 다시한 번 깊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건물을 나서는데 어느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앞을 가로막았다. 꽃다발을 가리키며 그대로 나가면 꽃이 다 얼어버릴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꼬깃한 신문지를 한뭉치 가져오시더니 그걸로 꽃다발을 싸고, 또 싸고, 결국 꽃다발의 형체를 의문해야 할 만큼이나 많이 싸신 후, 그제서야 환한 미소를 활짝 웃어보이시며 건네주셨다. 그렇게 러시아 사람들의 선한 행동들은 동양에서 날아온 어린 방문객이 날카로운 추위와 마주할 수 있도록 여행 내내 마음을 훈훈하게 지켜주었던 기억이 난다.

떠나는 날, 새벽부터 내린 함박눈으로 인해 비행기가 취소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틀이나 늦게 뉴욕에 도착했는데도 마음은 이미 정이 들어버린 아름다운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푹 빠져 헤어나올 줄을 몰랐다. 마린스키 극장의 우아함에 넘친 `백조의 호수` 공연, 그리고 에미타쥐 박물관의 근엄한 작품들도 오래도록 눈에 선했다.

여기 신시내티에도 눈이 한가득 내렸다. 한가한 일요일 아침, 창밖으로 하얀 세상을 바라보며 또다시 아련한 추억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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