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위원 |
그것들은 문화 콘텐츠가 갖는 변형(확대.축소)과 적용(응용) 가능성들을 활짝 열어두고 있었으며 마치 카메라폰과 휴대폰의 만남 같은 ‘결합`의 전형을 보여줬다. 드라마를 매개로 제주라는 향토자산에 기반해 고유한 ‘장소를 형성`(place making)하려 한다는 강렬한 느낌이 현지에서 들었고 또 실현 가능해 보였다.
잠시, 보령 머드축제의 성공 일화를 더듬어본다. 관사에서 비디오를 틀던 1998년 당시 박상돈 보령시장이 갯벌에서 남녀가 껴안고 뒹구는 장면에서 힌트를 얻어 “유레카!”를 외치며 갯벌축제를 상품화한 것이다. 우연에서 시작했지만 그 성공은 간단치 않은 사후 관리와 거듭된 업그레이드의 결과다.
PD 출신 군수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함평 나비축제도 ‘그냥` 된 것이 아니었다. ‘겨울 연가`의 남이섬이 최고 문화관광지로 등극한 것도 서울 송파구의 은행잎을 깔아 정취를 돋운 것과 같은 지극정성에 힘입었다. 요즘 부여 충화면의 서동요 세트장을 찾는 발길이 뜸해 하루 매상이 10만원 남짓이라 한다. 예산을 축내고 유지 비용이나 까먹는 퇴물화된 장소자산인가 싶어 못내 안타깝다.
여기에 한류가 접목되면 시너지는 말할 것이 없다. 전경련은 한류의 상품수출 효과를 한 해 5조7000억원으로, 부수되는 이득을 최고 20배로 추산한다. 한류를 넘어 머잖아 아시아류(流)라는 단일시장 주도권을 다툰다고 할 때, 다행히 그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과 문화소비 권력의 실체라든지 신한류 부활의 희망을 제주 현장에서 품을 수 있었다.
담덕과 수지니가 거닐던 저잣거리에서 마주친 일본인 여성은 “사흘째 촬영장에 계속 왔다”며 비공개 촬영 일정으로 욘사마가 언제 불쑥 나타날지 몰라 “주말을 빼고 평일 내내 진을 치는 관광객이 많다”고 귀띔한다. 국내성 대전의 소품들을 애무하듯 어루만지는 대만 여성의 손길에서도 한류는 결코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님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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