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묵]가로등 밑에서 시계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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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묵]가로등 밑에서 시계찾기

[목요세평]박재묵 충남대 교수

  • 승인 2007-12-05 00:00
  • 신문게재 2007-12-06 20면
  • 박재묵 충남대 교수박재묵 충남대 교수
▲박재묵 충남대 교수
▲박재묵 충남대 교수
시험을 보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일은 언제나 긴장감을 주게 마련이지만, 올해 수능고사를 본 대학 입시생들은 예년보다 더 애가 탄다. 자기가 받게 될 점수는 대충 알 수 있지만, 대학 입시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점수가 아니라 등급인데 도대체 그 등급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노라 하는 학원이나 입시전문기관에서는 고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과목별로 몇 점이면 몇 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예상을 내놓고 있기는 하지만, 그 예상이 발표하는 기관마다 다를 뿐만 아니라 원천적으로 정확할 수는 없다. 설사 예상이 정확할지라도 수험생의 심리 상태가 그걸 믿게 내버려두지를 않는다.

올해 수능고사에서 처음 도입되는 등급제가 수험생을 몹시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수험생들이 갈피를 잡을 수 없으니까 우선 수능성적보다 논술시험이 합격 여부를 좌우하는 수시전형에 대거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칭 잘 나가는 대학의 인기학과의 경쟁률은 사오십 대 일에 이르게 되었고 그 결과 수시전형에서 합격하는 것이 로또에 당첨되는 것에 비유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와중에 논술학원은 특수를 누리게 되었고, 잘 나가는 대학들은 짭짤한 전형료 수입을 챙기게 되었다. 세상이 뒤집어져도 기회를 얻는 자는 있게 마련이다.

교육 당국에서는 등급제의 도입이 입시경쟁을 완화하고 대학의 서열화를 막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어림없는 이야기이다. 불꽃 튀는 대입경쟁과 대학 줄 세우기를 완화하겠다는 정책 목표에는 찬성을 하지만, 그 수단으로 입시제도를 선택한 것은 적절치 못했다. 우리 사회 특유의 역사적ㆍ사회구조적 조건에 연유한, 전 세계적으로 높은 교육열과 졸업장 경쟁을 대입제도의 변경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발상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수능고사 성적 반영방식을 점수제에서 등급제로 바꾼다고 해서 대입 경쟁이 완화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비유를 하자면, 등급제 도입을 통해 입시경쟁을 완화하고 대학의 서열화를 막겠다는 것은 캄캄한 밤에 길을 가다가 시계를 잃어버린 사람이 불빛이 있는 가로등 밑을 맴돌면서 그곳에서만 시계를 찾으려 하는 것과 흡사한 일이다. 시계를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전혀 알 수가 없는데도 불빛이 있는 곳은 가로등 근처뿐이니까 거기서만 찾고자 한다는 것이다.

교육 당국은 더 이상 대입제도에만 매달려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서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도 어렵거니와 반복적인 혼란만 초래하기 쉽다. 우리 학부모들은 교육 당국이 마련한 문제 해결 수단을 항상 앞질러 가기 때문이다. 대입에서 내신 성적을 중시하게 되면 농구 과외를 시켜서라도 자녀의 내신 성적을 향상시키려 한다. 사회봉사를 중시하면, 학부모가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따라 다니면서 학생의 봉사활동을 찍어 상을 받게 만든다. 외국어 실력을 중시하는 대학이 있으면 조기유학을 시켜서 원하는 대학에 보낸다. 다양한 전형 요소를 도입해 봐야 특별한 자질이나 능력이 있는 학생이 아니라 발 빠른 부모를 둔 학생이 유리할 뿐이다.

일류대학을 나와야만 대접을 받는 사회 풍토가 치열한 입시경쟁의 주요 원인이라면 어느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대접을 받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적으로 낙후된 대학의 제반 교육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이러한 기반 위에서 이들 대학의 교육성과를 크게 향상시키는 데 힘이 모아져야 한다. 이러한 실질적인 변화가 선행되어야 대학 간 격차는 물론 줄 세우기 식 대학 평판구조가 완화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방과 지방대학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 특정 입시제도를 고수하는 것보다 훨씬 생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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