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남]가지치기 계절의 송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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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남]가지치기 계절의 송년회

[행복이야기]오종남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교수

  • 승인 2007-12-05 00:00
  • 신문게재 2007-12-06 21면
  • 오종남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교수오종남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교수
▶ 가지치기의 계절
요즈음 길을 다니다 보면 가로수 가지치기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여름철 그 무성하던 나뭇잎을 다 떨구어내고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맞고 있는 나무를 보면 그렇지 않아도 안쓰러운데 가지까지 잘라내니 더욱 추워 보인다.

어느 날인가 산책하는 길에 열심히 가지치기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어 그 이유를 물었다. 가지치기를 하던 분은 “나무가 건강하게 잘 자라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무는 자라면서 아래쪽에 있는 가지가 위쪽 가지에 가려서 햇볕을 충분히 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 몸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영양분을 충분히 만들지 못해 쇠약해져 죽는다고 한다. 나무들이 성장을 잠시 멈추는 늦가을부터 초봄사이에 가지치기를 해주면 나무는 튼튼하고 예쁘게 자라 아름다운 나이테를 갖게 되고 또한 옹이가 없는 매끈한 나무가 된다고 한다.

▶ 관솔불과 옹이구멍의 추억
어린 시절, 등유를 사용하는 호롱불조차 귀하던 산골마을에서는 관솔불로 어둠을 밝혔다. 관솔은 죽은 나뭇가지의 흔적이다. 나뭇가지가 말라 죽으면서 남긴 그루터기는 나무가 자라면서 점차 안으로 말려 들어가게 되는데 이것이 옹이이다. 그리고 이 옹이에 송진이 스며 만들어진 것이 바로 관솔인 것이다.

또 판자 울타리가 있는 집에는 여기저기 떨어진 옷을 기워 놓은 것처럼 구멍을 막아 놓은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사람들이 집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특히 나이든 처녀가 있는 집에서는 동네 총각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막기 위해 옹이가 빠진 곳을 때워 놓은 것이다.

우리는 마음에 한이 응어리져 있을 때 “마음에 옹이가 맺혔다”고 한다. 옹이는 나무의 아픈 상처의 결과이다. 옹이는 끝내 나무와 융합하지 못한 채 따로 논다. 그래서 나무를 얇게 제재한 판자에는 여기저기 동그랗게 옹이가 있고 이 옹이는 조그만 충격에도 쉽게 빠져나간다.

▶ 조용하고 의미 있는 12월을
12월은 송년모임으로 바쁜 달이다. 한해를 보내면서 그동안 신세진 사람이나 고마운 사람에게 인사도 하고 직장 일로 분주해서 만나지 못한 친구를 만나 회포를 풀기도 한다.

그런데 송년모임의 더 큰 목적은 한해 동안 이런 저런 일로 섭섭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 마음의 응어리를 푸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송년회보다는 잊을 망(忘)자를 쓰는 망년회가 훨씬 더 친숙하다.

망년회는 응어리진 마음을 푸는 자리여서인지 대부분 2차,3차의 술자리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요즈음 늦은 밤 길거리에 나가보면 술에 취해 비틀 거리는 사람들로 거리가 소란스럽고 어수선하다. 그리고 이따금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연말을 어떻게 하면 보람있고 의미있게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술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손실은 물론 개인적인 건강의 훼손과 정신적인 피폐는 자칫하면 한해 중 가장 의미깊은 연말을 허투루 보내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에...

몇 해전 어렵게 시간을 내서 문경에 있는 정토수련원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4박5일 동안 외부와 일절 연락을 끊고 오직 한가지 “나는 누구인가” 라는 화두를 붙잡고 깨달음을 위해 정진해 본 보람 있는 경험이었다.

정토수련원에서 느낀 생각을 바탕으로 연말이면 가급적 남다르게 연말을 보내고 있다. 요란한 망년회에 꼬박꼬박 참석하여 어울리는 대신 조용히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가능하면 가족이나 직장 동료와 되도록 많은 시간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12월 일정에 빼곡이 적힐 모임약속을 지우고 나면 달력이 시원하고 마음도 여유로워진다.
연말에 가지치기를 보면서 한해를 보내며 금년에 본의 아니게 맺힌 마음의 옹이를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소 마음의 가지치기를 통하여 옹이를 만들지 않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가지치기를 한 나무는 옹이 수가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금년의 송년 가지치기가 새해에는 나와 나를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옹이를 줄여주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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