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일순 대전서원초 교사 |
“혹시, 아버님이 0자, 0자, 0자 아니세요?”
하고. 깜짝 놀라 온 몸이 다 경직되었다.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너무도 오랜 세월 아버지의 이름을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조차 생소하게 들리는 아버지의 함자였다.
돌연 형연할 수 없는 감정의 휘오리가 나를 덮쳤다. 아버지 가신 지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다른 사람 입에서 처음으로 들어보는 아버지의 함자였다. 그것도 고향이 아닌 타향 객지에서, 나 보다 훨씬 젊은 사람의 입을 통해 아버지의 함자를 듣게 되는 감회가 남달랐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선량한 얼굴이, 한량없이 퍼주시던 사랑이 구체적으로 떠올랐지 이름으로 떠올려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녀는 아무런 물증도, 근거도 지니지 않은 채 어쩐지 그럴 것만 같은 예감으로 물었다 했다.
같이 근무하는 후배 여교사인 그녀는 아홉 살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 아버지가 담임을 맡았다고 털어놓았다. 돌연 겁이 났다. 집 밖에서의 아버지가 어떤 분이었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으므로. 그녀는 아버지를 선했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내심 안도했다.
그녀로 인해 아버지는 활력이 넘치던 젊고 패기 있던 모습으로, 삶의 주역으로 동분서주하던 날들의 모습으로 생생히 되살아났다.
그제야 아버지의 함자도 생생히 떠올랐다. 산을 뒤에 두고 강가 양지 녘에 서있던 우리 집, 나무로 깎아 건 문패 속의 아버지 이름이 필체조차 선명하게 떠올랐다. 필경사처럼 눌러 쓴 월급봉투 속의 아버지 함자도 눈에 보이는 듯 했다. 사은회 때 받았던, 놋주발 뚜껑에 실 보다 가는 글씨체로 새겨 넣은 아버지의 이름까지도. 그 무렵 유난히 술을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어둠을 타고 저녁 늦게 오시며 유쾌한 얼굴로 들어서시던 모습까지 훤히 보이는 듯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담임했다는 그녀는 20여 년의 세월 건너 학부모가 되었고 난 아홉 살 난 그녀의 아들을 담임하고 있었다. 그녀의 아들 이름은 한솔이었다. 전부터 난 한솔이에게 깊은 정이 갔다. 너부죽한 얼굴에 선량한 표정의 그 녀석이 나는 그저 좋았다. 복도에서 쿵쾅대며 아이들과 우르르 우르르 몰려다니거나 장난치다 걸려들었을 때, 얼굴이 빨개져서 온 몸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까지도 예뻤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연(緣)으로 얽혀있어 나는 그 녀석이 무작정 좋았던가 보다.
나, 살기 바빠 아버지를 잊고 산지도 오래 되었는데, 그런 내가 서운해 아버지는 어린 시절의 제자였던 그녀의 입을 빌어 내 안에 생생한 모습으로 돌아오신 것이었다. 젊고 패기 넘쳤던 젊은 날의 내 아버지가 눈물나게 그리워졌다.
아, 아버지, 그리운 내 아버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