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숙 충남여성정책개발원장 |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인도주의적 지원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쌀 지원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통일 후 북한 여성들이 큰 물 피해로 고통을 겪을 때 남한 여성들은 무엇을 했느냐고 물어온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최근 국제관계 이론에서는 ‘여성안보`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1985년 나이로비에서 개최된 세계여성회의에서 ‘확대된 안보`, ‘포괄적 안보`라는 개념이 제기된 후 1995년 북경대회를 전후로 평화문제는 성 주류화와 함께 21세기 여성발전전략의 기본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전쟁 억지`에 초점이 맞추어지던 기존의 안보 담론이 가난, 부정의, 불평등, 인권유린, 착취적 억압, 성차별 등 폭력을 야기하는 모든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평화문화 담론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사망자의 80%가 여성이었다. 카슈미르, 소말리아, 방글라데시, 르완다, 보스니아 난민의 75∼80%도 여성과 어린이다. 그런데 정작 여성들은 오래 전부터 평화운동을 해 왔다. 이미 1852년에 ‘자매들의 목소리`라는 여성단체가 평화운동을 시작했으며, 1915년에는 헤이그에서 국제여성평화대회가 개최되었다. 이스라엘에서 대팔레스타인 군사 활동 중단을 촉구한 것도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이라는 여성단체였으며, 세르비아에서 자행된 인종청소용 강간에 항의한 것도 여성들이었다.
남북한 여성들이 연대의 고리를 이룰 키 워드는 ‘민족`과 ‘여성`이다. 그러나 남북한 여성들이 ‘민족`과 ‘여성`에 대해 지니는 정향은 매우 상이하다. 2001년 이후 북한이 외부 세계에 발표하는 문건들에 자주 등장하는 ‘민족공조`만 해도 남북한에서 다른 개념으로 쓰이는 것이다.
‘여성`이라는 키 워드 역시 남북한 여성들에게 전혀 다른 정향으로 다가선다. ‘조선역사` 교과의 경우 전체 등장인물 중 여성은 10.9% 정도이며, 그나마도 역사적 여성에 관한 기술 중 82.6%가 강반석과 김정숙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남북한 여성들이 ‘민족`과 ‘여성`이라는 2개의 키 워드를 고리로 21세기적 안보를 실천하려면 여성계 교류와 여성 평화운동을 활성화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제2차 정상회담 개최 직전에 여성계의 강력한 요구로 겨우 3인의 여성이 대표단에 포함된 사례에서 보여지 듯 한반도 평화체제 정립을 위한 수많은 중요 회담에서 여성은 제외되어 왔다.
그리고 여성계 남북교류도 여성단체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이루어져오면서 정치상황에 따라 무산되기 일쑤였다. 또 어렵게 만남이 이루어진다 해도 남한은 여성단체 대표가, 북한은 정부의 공식 대표가 참여해 다른 남북교류나 사업보다 입장 차이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차기정부는 정상회담, 고위급회담 등 평화협상 테이블과 통일, 국방, 외교정책 결정과정에 있어서 여성의 대표성을 확보해야 한다. 남측이 공식적인 고위급 회담에 여성 대표를 참석시킨다면 북측의 여성대표 참석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부도 여성관련 사업을 전담할 부서와 인력을 강화하고 여성을 중요한 평화정책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 또 남북합의서나 교류협력관련법에도 남북한 여성들의 관심을 이끌어 낼 여성의제를 포함시켜야 한다.
현재 탈북자의 80%가 여성이다. 평화와 갈등의 관리, 해결, 예방을 위한 모든 노력에서 여성들의 참여를 강조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325조항을 준수하는 차기 정부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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