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준 공주대 교수 |
그러나 목숨을 걸기라도 하듯 이런 것에 혈안이 되면 문제가 있다. 사주가 좋다고 태어나는 시간을 인위적으로 바꾼다거나, ‘수지부모한 신체`를 성형하여 바꾸는 것, 이름을 바꾸어 또 다른 삶을 기대하는 것 등을 보면서 참으로 대단한 노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정도의 노력을 실제 삶에 투여하면 성공 못할 것도 없겠다 싶다. 그러나 역시 나는 그들이 노력보다는 쉬운 길을 찾는 요령꾼 같아 보인다.
우스게 소리지만, 손금이 100%이고, 관상과 사주가 100%라면 무조건 그것을 따르든가 아니면 변형시켜서라도 잘못된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세상사가 사주팔자나 손금, 작명으로 바꾸어지지는 않는다. 손금도 좌우가 달라 남자의 왼쪽 손금은 타고난 팔자요 운명이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인생을 100%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5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른 쪽 즉 오른쪽 손금이 바로 스스로가 살아가면서 개척하는 인생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손금쟁이의 철학에서도 인간 본인의 노력 분을 배려하고, 유의한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모든 노력을 다하면서, 아니면 열심히 살아가는 자세가 기본이 되고 거기에 지금 이야기하는 여러 기원들을 덧붙여야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사실 땀 흘리는 것보다, 편하게 살고, 그러면서도 풍요롭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힘은 들지만, 자신이 노력하여 얻은 소득은 그런 횡재보다 보람되고 빛이 나며, 미래의 자산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어머니가 동짓달 새벽 장독대에 정안수를 떠놓고 빌거나, 당산나무에 1년 운수를 기원할 때 무모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왠지 아는가? 어머니의 평생이 자식을 위하여, 그리고 진지한 삶을 살아오셨음을 알기 때문이다. 또 교회나 성당, 법당에 가서 정성으로 기도하는 것을 욕하지 않는다. 욕을 먹는 경우는 아마 평소에 도대체 성의가 없거나 엉뚱한 행태를 보이던 사람이 자기만을 위하여 빌기 때문일 것이다.
공주대학교가 이름을 바꾼다고 보통 난리가 아니다. 얼마나 속이 타면 이름까지 바꾸려고 할까? 최고 지성의 전당이라고 자부하는 대학에서마저 작명을 하여 신세를 바꾸어 보겠다고 하는 지경에 이르렀나 싶으니 서글픈 경쟁 속의 대학현실을 보게도 된다. 필요하다면 당연히 고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력하는 모습을 먼저 보이기는 것이 순서라 생각한다.
대학의 경쟁력은 대학구성원의 합일된 의지와 노력, 끝없는 도전이다. 충남의 유일한 국립대학이면 그에 알 맞는 청사진과 땀 흘리는 모습, 한마음으로 지역과 학생을 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특히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에 차 있어야 남들도 존경한다. 그럼에도 그러한 진지함이나 노력은 보이지 않으면서, 자신의 가치와 전통은 스스로 부정하면서, 단지 작명만으로 대학이 발전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둔함의 극치이다.
특히 그 주체들은 공주에 대한 여러 회한을 가진 타지역 출신들이므로 ‘공주`라는 이름만 떼면 무엇이든 좋다고 한다하니 이는 경쟁력을 위한 발상이 아님도 분명하다. 주인이 아닌 객이니 공주사대 60년의 전통과 문화는 쉽게 버릴 수 있겠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자. 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그리고 알바 현장에서 자신의 땀을 흘린다. 그 모습과 그 경험이 미래의 자산이 되고 브랜드가 되는데, 그것을 가르치는 대학의 선생들이 노력은 소홀히 하면서, 그리고 그 선두에 선 총장이 지역과 대학내부의 갈등을 조장하면서까지 이름 바꾸기로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발상은 정말로 수준 이하이다. 지성으로서 현실을 바로 보는 모습이 결코 아니다. 믿을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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