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
어떤 경우인고 하니, 해남 고천암호의 먹황새, 창원 주남저수지 갈대밭에 쌍거쌍래 찾아드는 큰고니나 금강 하구언의 도요새, 또는 서산 천수만 가창오리의 정형화되지 않은 잡가 새타령을 무시로 만났을 때다. 엊그제는 실로 오랜만에 오정숙의 적벽가 중 새타령을 들었다.
인간문화재 오정숙 선생은 어느 해 방학 중 머무르던 푸근한 비구니 절에서 만났다. 밤새 작품을 준비하고 아침해가 부처님 겨드랑이에 파고들어서야 짧은 아침잠에 빠져들던 어느 날. 학생, 학생! 스님이 편찮으시니까 이따 좀 살펴봐요! 요사채 문밖, 다급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판소리 다섯마당에서 듣던 목소리였다. 그 조계종 말사에 오 선생이 머무르면서 수궁가를 완성했는데, 벌써 흘러간 이야기다.
추억을 뒤로하고, ‘공기쑤루룩` 날아드는 뭇새들의 잘도 앵기는 울음을 다시 듣는다. 모가지를 길게 뽑아 두 나래 탁탁 치며 꼭기요 시-유. 해괴하게시리 ‘꼭기요 시-유`라니, 옛 책을 읽다 얼마나 껄껄껄 웃었는지 모른다. 사서삼경의 하나인 시경에 나오는 새소리도 알고 보면 질펀하다. 까치는 강강(彊彊-강하게 사랑해 줘), 꾀꼬리는 해해(偕偕-함께 살고 싶어), 닭은 교교(膠膠-꽉 붙자), 콩새는 교교(交交-사랑하자).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은 새타령의 남원산성 이화문전을 ‘남은` 산성과 ‘이왕`(조선) 문전으로 보며, 파랑새의 파랑은 팔왕(八王)=전(全), 바로 녹두장군 전봉준이라는 설을 내놓지만 말이다.
그렇게, 가령 김세레나 노래 속의 ‘온갖 잡새`를 남자(남성)로 본다든지 해서 남아나는 노래 있을까.
이 산 저 산에서 나는 ‘쑥꾹 쑥꾹`, ‘쑥쑥꾹 쑥꾹`이 성적 의성어라면 ‘어-어이 이히이히 음`에 이르러선 더욱 미묘해진다. ‘얼씨구 씨구 들어간다`로 운을 떼는 장타령의 은유도 말릴 재간이 없다.
남녀상열지희를 고소한 군밤에 빗댄 군밤타령은 가히 19금(禁)급 묘사다. 얼싸 좋네 군밤이여 삶은 밤이로구나 응애. 도라지타령의 도라지가 어떻게 내 간장을 스리살살 다 녹이는가. 도라지가 남성이고 바구니가 여성이니 통하는 노랫말이다. 흥타령의 삼거리는 인체의 삼각지(?)로도 볼 수 있다. 천안삼거리 능수버들이 밤낮 늘어진들 성화(成火), 즉 불이 날 까닭이 뭐 있겠는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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