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수능시험을 마친 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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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호]수능시험을 마친 딸에게

[석가헌 이야기]최민호 충남도 행정부지사

  • 승인 2007-11-21 00:00
  • 신문게재 2007-11-22 21면
  • 최민호 충남도 행정부지사최민호 충남도 행정부지사
얘야 너도 기억나니?
그날도 학원을 마치고 밤늦게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너에게 이 아버지가,"얼마나 힘드니? 세상이 너희들에게 너무 가혹하구나." 라고 했더니 " 아니에요, 아빠 고3은 우리시대의 성인의식인걸요." 했던 말 말이다. 그래, 그때 너는 참 대견스러웠다.

훌륭한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어디 그리 수월한 일이겠니. 요즘도 너희들 사이에서 데미안을 얘기하면서 알을 깨고 나오는 아픔 없이 성숙은 없다고 하는지들 모르겠다만, 예전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소년들이 성인이 되려면 양쪽 가슴팍을 쇠갈고리로 꿰어 나무에 매달린 채 온종일을 참아내야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고통을 견뎌낸 사내들만이 앞가슴의 흉터를 자랑하면서 스스로가 성인임을 과시하였다. 남미의 어느부락에서는 짐승과 뱀이 우글거리는 정글 속에 혼자 들어가 몇날을 보내고 돌아와야만 성인이 됐었다. 성인임을 인정받는 시련이 있는 날, 어머니들은 아이가 받을 그 쓰라린 고통에 함께 괴로워하며, 아이가 성공하도록 빌고 또 빌며 애닳파 하고 있지 않더냐. 이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수능은 네 말대로 우리사회의 성인의식과 같은 것이리라.

시련의 과정을 꿋꿋하게 1년, 아니 그이상의 기간을 버티어온 너희들. 아버지는 너희들에게 먼저 감사와 축복의 박수를 보내고 싶구나. 이제 수능은 끝났다. 온사회가 주시하며 가슴졸이던 너희들의 성인의식은 일단 끝났다. 너희들의 마음은 후련하되 착잡하고, 시원하다가도 못내 속이 아플 것이다. 숨막히던 긴장 속에 기량껏 시험을 못치른 아쉬움에 무슨 마음이 편안하기만 하겠느냐.

알던 문제를 실수로 틀리고만 속상함에 눈물을 글썽이던 너를 보는 이 아비의 마음도 짠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쨌든 끝났다. 너희들은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겸허하게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할 것이다. 하지만 수능시험의 의미가 단지 대학에 지원하기 위한 점수에만 있겠느냐. 너희들이 그 오랜기간 준비해 온 수능시험은 성인이 되는 너희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데 쥐어진 솔로몬의 지혜의 상자 같은 것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우선 너희들이 수능을 위해 혼신을 다해 외웠던 그 많은 과목의 지식은 점수를 떠나 앞으로 너희들이 살아가는데 소중한 보배로서, 때로는 예리한 이성이 칼이 되기도 하고, 나태와 방종을 막아 주는 방패가 되기도 할 것이며, 혹은 교양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장담컨대, 아버지가 여지껏 살면서 응용했던 다양한 지식은 일부 전공지식을 빼고는 바로 고3때 입시공부를 하면서 얻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인간을 두뇌와 가슴과 근육의 인간으로 분류해볼 때 고3때의 그 엄청난 공부는 바로 두뇌의 인간을 성장시키는 훈련이었다. 두뇌의 용량은 바로 이성의 역량이기도 한 것이다. 수능을 통해서 비단 이성의 성장뿐이었겠느냐, 그동안 공부하느라고 감내했던 자기절제, 인내, 갈등, 모순에 대한 인식들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세계가 부쩍 큰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시켜 주었다.

너희들은 수능은 쇠갈고리나 정글보다 더 혹독하고도 세련된 성인을 향한 종합의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수능을 치르기 위해 너희들이 겪었던 고뇌와 수양, 그리고 그 긴기간동안 침잠시킨 방대한 지식의 과정이야말로 점수와 관계없이 너무도 가치 있는 것이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혹여 수능의 결과만에 너무 집착함으로써 점수로 나타나지 않는 너희들의 성장을 결코 무시하거나 간과하지 말아라. 이제 끝났으니 좀 쉬렴.

머리를 쉬면서 가슴의 인간, 근육의 인간으로 스스로를 다시 보강해 보렴. 못 보았던 책과 영화도 실컷 보고 헬스크럽이나 새벽의 도로위도 뛰어 유약해진 육체를 단단하게 만들어 보거라.

시험결과는 책가방 속에 깊숙이 묻어두고, 그간 하고 싶었던 무엇이든 도전해 보거라. 내일은 엄마와 함께 예쁜 옷도 한벌 사거라. 아버지가 강아지 한마리 사줄까? 허나 의식이 끝났다고 성인이 된 것은 아니다. 술담배, 머리염색은 아직 안된다. 졸업식 때까지는 말이다. 인내는 너희들의 전공이지 않니. 정글을 다녀온 자랑스럽고 대견한 너희 고3들아… (4년전 고3딸 서경에게 쓴 글을 다시 올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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